'키 162㎝ 벽' 서러운 승무원 지망생…외국보다 높아

입력 2014-11-10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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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사 5곳이 승무원 채용 때 키를 '162㎝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를 거쳐 2008년 3월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채용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대한항공은 7년째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각 항공사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자회사 진에어 외에도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5개 항공사는 남녀 승무원 지원 자격으로 '신장 162cm 이상'을 명시하고 있다.

승객의 짐과 서비스용품, 구급장비, 비상탈출장비 등을 보관하는 기내 적재함을 여닫거나 비상용품을 꺼내고 적재함 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므로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적재함 높이는 대개 200㎝가 넘고 대형 기종의 경우 최고 214㎝다.

대한항공 홍보실의 이기광 상무는 "객실 승무원의 키가 162cm 이상은 돼야 기내 안전 확보와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해 1990년부터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승무원 학원 관계자는 "승무원이 되고 싶어도 162㎝ 기준보다 1∼2㎝가 작아 상담을 해보고 학원에 등록하지 않고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국인 승무원이 많은 중동 항공사가 키에 까다롭지가 않은 편이라 키가 작으면 중동 항공사를 지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등의 신장 기준에 대해 승무원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국내외 다른 항공사보다 더 엄격하며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싱가포르항공과 일본항공(JAL)은 지원자격이 키 158㎝ 이상이며 루프트한자항공과 핀에어는 나란히 160㎝ 이상이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신장 기준이 5피트(152.4㎝)이다.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 중동 항공사와 캐세이퍼시픽항공 등은 키 대신 '암리치'(arm reach) 기준을 두고 있다. 통상 맨발로 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어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뜻한다.

에미레이트항공과 카타르항공은 최소 암리치가 212㎝이며 에티하드항공은 210㎝, 캐세이퍼시픽은 208㎝다.

미국 델타항공이나 에어캐나다처럼 키나 팔 길이 기준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KLM네덜란드항공 자격요건에는 키 제한은 없으나 '너무 작거나 크지 않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델타항공의 홍보를 맡은 버슨마스텔러의 계기윤씨는 "델타항공은 키나 팔길이 기준이 따로 없다. 업무를 잘할 수 있는지만 본다"면서 "아무래도 미국은 차별에 특히 민감하니 기준을 두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2008년부터 지원자격에서 신장 기준을 없앴다.

다만 자격 요건에서 '기내 안전 및 서비스 업무에 적합한 신체조건을 갖춘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에어부산도 승무원의 신장을 제한하지 않는다.

아시아나항공이 162㎝ 기준을 없앤 것은 인권위원회가 채용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인권위원회는 승무원 지망생들의 진정을 접수하고 2008년 조사를 거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 키 제한에 대해 "불가피성이 입증되지 않은 신장조건을 근소한 차이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신장 162cm 미만인 사람이 응시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대한항공 등이 신장 162㎝ 이상이 업무수행상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형항공기를 다수 보유한 외국 항공사와 비교하면서 "외국항공사들과 승무원 신장조건이 2cm에서 4.5cm까지 차이가 나므로 신장 162cm 조건이 업무수행을 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관계자는 개선 권고를 따르지 않은 대한항공에 대해 "아직도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인권 마인드가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청과 소방방재청도 채용 시 키와 몸무게를 제한하다 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받아들여 결국 2008년 제한을 없앤 바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인권위 권고는 강제력이 없다"면서 "회사 나름대로 채용기준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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