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칼럼]기능 상실한 통화정책

입력 2014-11-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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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최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25%에서 2.0%로 인하했다. 지난 7월 최경환 경제팀이 들어선 이후 두 번째 인하이다. 향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대까지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기는 여전히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리인하가 경기활성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경우 통화정책은 본연의 기능을 잃고 거꾸로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미 금리인하의 성패를 좌우하는 증권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최경환 경제팀의 취임 초기인 7월 말 2,100선에 육박하던 주가지수가 10월 들어 1,900선까지 떨어졌다. 외국자본은 서둘러 빠져나가고 있다. 금리를 인하하면 증권시장이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자금 조달이 쉬워져 투자가 늘어난다. 또 투자자들의 재산이 늘어 소비가 활력을 찾는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증권시장이 하락한다는 것은 통화정책이 사실상 실패라는 것을 뜻한다. 향후 상황이 악화할 경우 경제와 증권시장이 함께 주저앉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취임 직후 경제가 살아날 때까지 돈을 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부응하여 한국은행이 연이어 기준금리를 내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기준금리의 인하는 대출금리를 떨어뜨려 민간부문에서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을 살려 내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자 금융기관 대출이 늘고 있다. 대출규제의 완화에 힘입어 주로 주택담보대출이 증가세이다. 그러나 경기 활성화와 관련이 없다. 지난 8월 당연히 늘어야 하는 설비투자가 오히려 10.6%나 감소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주택 구매로 자금이 흐르지 않고 절반 이상이 생활비나 빚을 돌려 막는 데 쓰이고 있다. 지난 1~7월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액 52조원 중 28조원이 주택 구입에 쓰이지 않았다. 가계부채는 이미 1,040조원을 넘어 상환이 어려운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하 정책이 경기를 부양하는 대신 경제를 악성 빚더미 위에 올려놓고 있다.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이 정부 정책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펴야 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가져온다. 이런 견지에서 한국은행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한국은행은 정부의 성장위주의 정부 정책에 따라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하는 정책을 폈다. 총재 임기 4년 동안 기준금리를 4번 인상하고 40차례나 동결했다. 이렇게 되자 금리 기능이 식물 상태가 되어 경제 정책으로서 의미를 상실했다. 여기에 경제성장률 등 갖가지 경제지표의 예측도 예상을 빗나가 시장의 신뢰까지 잃었다. 현 정부 들어 한국은행이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편승하여 기준금리를 무책임하게 내리자 급기야 경제가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통화정책은 경제의 안정 성장을 결정하는 핵심 수단이다. 통화정책을 무력화하는 것은 수시로 밀어닥치는 경제 불안에 무장해제를 자처하는 것이다. 특히 경제가 부도위기에 처할 때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국가부도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경기부양이 아무리 급하다 해도 금기 사항이 있다. 바로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팀은 이를 무시하고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를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 “척하면 척”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할 정도이다. 그러자 한국은행이 정부의 의도에 따라 기준금리를 연속적으로 인하하면서 화를 부르고 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경제 불안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연구개발 체제를 확대하여 신성장동력 창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경제구조를 개혁하여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미래 산업 발전을 주도하게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규제완화와 관료주의 혁파를 서둘러 기업의 창업과 투자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다음 재정팽창, 금리인하 등 갖가지 경기 부양책을 강구하는 것이 순서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이 독립적으로 수행하게 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경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측을 하는 것은 물론 마비된 통화정책의 기능을 되살려 경제를 올바르게 살리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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