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회장,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는 뜻 삼성사명 지어
삼성, 현대, LG, SK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의 사명은 어떻게 나왔을까?
기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사명은 사운(社運)과 연결 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사명에는 첫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주의 초심이 깃들어져 있기 마련이다. 물론 대기업들 가운데 초기 사명에서 ‘진화 혹은 변경’을 통해 전혀 다른 사명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창업주의 뜻을 따라 사명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재계서열 1위인 삼성그룹의 모태는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29세 때인 1938년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때 이 회장이 ‘삼성(三星)’이라고 짓게 된 이유는 회사가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는 뜻에서였다.
‘삼(三)’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의 세 가지를 의미한다. 3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으로 한국 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며 숫자의 조합 상 가장 완벽한 숫자라고 알려진다. ‘성(星)’은 밝고, 넓고, 영원히 깨끗이 빛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고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인 호암자전에서 밝혔다 .
삼성의 이름 덕분이었을까,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 회장은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 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간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고 이병철 회장과 쌍벽을 이뤘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우에 ‘현대’라는 사명이 짓는 데 그리 심오한 뜻을 내포하지는 않았다.
현대그룹의 시초를 볼 때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지난 1947년 현대토건을 설립하면서 부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토건 3년뒤 현대건설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그룹의 모태가 됐기 때문.
하지만 정 회장은 1년 전인 1946년 다른 회사를 설립하면서 ‘현대’라는 사명을 사용했다. 정 회장은 일제 하에서 부두노동자, 건설잡부, 제과공장 견습공, 쌀도매상 배달원을 거쳐 ‘경일상회’라는 쌀 도매상을 운영했다.
1940년에는 쌀 도매상 문을 닫고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수리소를 경영했다. 이것이 일제의 기업통폐합조치에 정리 당하고, 해방 후 미군 자동차 수리일에 종사하다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한다. ‘현대(現代)’라는 상호가 사용된 것은 이때부터다.
정 회장이 ‘현대’라는 이름을 사용한 유래에 대해 생전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자동차 수리공장을 했기 때문에 ‘現代’라는 이름을 생각한 거 같아요. 자동차라는 건 ‘현대문명의 이기(利器)’입니다. 그 당시의 자동차는 아주 대단한 것이었으니까요.” 정 명예회장의 경영스타일과 딱 들어맞는 작명이었다.
◆ 현대,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란 뜻에서 출발
LG그룹만큼 사명이 여러 번 바뀐 기업도 없을 정도 사명은 끊임없이 진화됐다. 지난 79년 럭키그룹으로 시작해서 84년 럭키금성그룹, 95년에는 지금의 'LG'로 자리를 잡게 됐다.
럭키그룹의 모태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창업주의 고 구인회 회장은 지난 1931년 7월 경남 진주시 진주식산은행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구인회 상점'을 열면서 사업기반을 다졌다.
그러다가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면서 처음 만든 화장품 이름을 '럭키(LUCKY)'라고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명으로 변하게 된 것. 이어 화학제품계열 기업 럭키와 전자제품계열 기업 금성(Gold Star)이 합병되면서 자연스럽게 ‘럭키금성’됐다. 이어 각각의 맨 앞 영문이니셜을 따서 지금의 LG로 사명이 정착됐다.
그러나 LG측은 이러한 역사적 유래와 상관없이 LG가 럭키금성, 즉 ‘Lucky Goldstar’의 약자가 아니라고 한다. 비록 유래됐지만 더 이상 그것의 줄임말이 아니라, LG라는 새로운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LG그룹과 분리 된 GS그룹도 마찬가지다. GS측은 “특정 단어의 이니셜을 딴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GS라고 불러달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굳이 뜻을 의미한다면 Good Service, Great Satisfaction 정도라고 밝혔다.
이는 글로벌 화에 맞춰 우리말 같이 로마자로 적기도 읽기도 까다로운 언어의 경우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로마자로 적기보다 이니셜을 사용해서 간단히 적는 것이 더 편리하다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마디로 영문이름이 최근의 사명의 트랜드라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SK는 선구자적인 기업이다. SK라는 사명은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에서 선경의 앞글자 영문이니셜을 따왔다. 사실 SK그룹의 시초였던 선경직물은 1930년대 일본인이 조선에서 만주 일대를 대상으로 직물을 수출하던 선만주단(鮮滿綢緞)과 일본의 교토(경도)직물(京都織物)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였다.
상호도 선만주단의 '선'자와 교토직물의 '경'자를 따서 '선경(鮮京)'이라고 지은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경직물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위기에 봉착한다. 이에 고 최종건 회장은 선경직물을 재건하기 위해 1953년 부친 몰래 빼낸 땅문서로 공장을 불하받는다. 이후 선경직물은 나일론 생산을 계기로 본격적인 섬유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오늘 날의 SK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됐다.
◆ 롯데,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 따와
자신이 좋아하던 소설 속 여인의 이름을 기업명으로 지은 총수도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성공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 간 후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면서 신문, 우유 배달 등 잡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하면서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 갈 정도로 문학을 사랑했다.
그때 열독했던 소설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1946년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두고 첫 사업을 시작했다. 이 때 사명은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였다. 처음엔 비누와 크림을 만들었지만 사업이 확장되면서 껌까지 만들었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면서 신 회장은 1948년 신주쿠에 종업원 10명으로 롯데를 설립한다. 롯데라는 사명은 문학도를 꿈꿨던 시절 사랑했던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따왔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만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는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한다. 당시 화약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최초로 국내기술을 도입해 자체생산을 시작한 것이 한국화약 주식회사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화약주식회사라는 회사명칭이 붙였다고 한다.
이후 계열사가 늘어나면서 한국화약그룹으로 이어지다가 1992년 한화로 변경하게 된다. 화약 부문이 전체 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유통, 레저, 금융 등 서비스 분야의 다양한 계열사를 보유하게 되자. 전체 그룹 사업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사명으로 바꾸게 된 것.
동부그룹도 김준기 회장이 직접 고안해 지은 작명이다. 동부의 시작은 지난 1971년 강원도 버스 사업인 동부고속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평소 미국 서부개척사에 깊은 감명을 느꼈던 김 회장은 도전과 개척 정신에 의해 부와 풍요를 쟁취하는 서부개척사에 착안하여, 도전과 개척을 뜻하는 '동'과 안정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부'를 결합하여 동부라는 이름을 지었고 이를 1972년 동부고속에 처음 사용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