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지호 증권부 기자 "해외 헤지펀드와 대기업 경영권"

올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 총수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순환출자의 해소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여야의 유력 대선후보는 신규 순환출자의 금지에는 동의하면서도 기존의 순환출자를 해소하느냐를 두고는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기업은 순환출자의 규제가 현실화한다면 지배주주의 의결권이 축소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국내 대기업은 취약한 순환출자 지배구조로 해외 헤지펀드에 적지 않은 경영권 위협을 받아왔다.

지난 1999년 타이거 펀드의 SK텔레콤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로 본격화된 해외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은 소버린의 SK지분 매각을 통한 1조원 ‘먹튀’ 논란에서 절정에 달했다. 요즘에는 대선 이후 순환출자의 규제가 현실화하면 삼성전자, 현대차 등 주요 기업까지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재계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해외 헤지펀드를 무조건 ‘기업 사냥꾼’이라고 헐뜯기에는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지나치게 후진적이다. 오히려 극소의 지분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정의의 사도에 가깝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SK의 최태원 회장은 최근 수직적 지배구조의 파괴를 선언하고 총수의 권한을 위원회(계열사)에 넘기는 경영합리화 전략 ‘따로 또같이 3.0’을 발표했다. KT&G역시 칼 아이칸의 경영권 위협 이후 고배당 정책으로 주가를 관리하는 등 해외 헤지펀드에 혼난 기업들은 겉으로라도 지배구조의 개선과 주주권리 강화에 애쓰고 있다.

국내 대기업은 늘 ‘글로벌’을 외치면서도 지배구조에 있어서만큼은 ‘골목대장’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우량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한다는 호소로 언제까지 소액 주주와 국민이 대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용인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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