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조장옥 칼럼] 국가부채가 신용이던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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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독립직후엔 경제 부흥시킨 자산
지금은 재정포퓰리즘에 나라 ‘흔들’
한국도 재앙 부르기 전 긴축나서야

역사적으로 현재의 세계질서를 만든 사건은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고 정치·사회적으로는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혁명이다. 일상적으로 지금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역사는 짧다. 먼 옛날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있었다는 전설 같은 역사를 배우지만 그 당시의 민주주의는 주민이 지금처럼 많지 않은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했었다. 영국의 민주주의가 1688년 명예혁명으로부터 꽃피웠다고 하나 우리의 민주주의와는 제도적으로 거리가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바와 같이 다양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존중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 독립 이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미국이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전쟁을 치른 것은 아마 누구나 알 것이다. 식민지에 전쟁을 치를 전비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였을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전표(傳票)를 발행하여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징집하였다. 여러 주가 전쟁에 참가하였기 때문에 전표의 발행자도 각각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정부가 구성되면서 전쟁 중에 발행한 전표(부채)를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가가 중대 사안으로 등장하였다. 전쟁 중 전표는 비상시에 발행된 것이니 무시하고 소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1757~1804)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미국 독립과 함께 1789년 수립된 조지 워싱턴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다. 해밀턴은 어느 상황에서 발생한 국가부채이더라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거래에는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신념이었으며 미래에 국가가 다시 위기에 처해 민간으로부터 차입해야 하는 경우도 고려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해밀턴의 생각은 그보다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불과 24세이던 1781년, 독립전쟁의 재정 책임자였던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Jr., 1734~1806)에게 보낸 긴 편지에서 그는 “국가부채는, 지나치지만 않다면, 국가적인 축복이다(A national debt, if it is not excessive, will be to us a national blessing)”라고 적고 있다. 중앙은행의 개념이 널리 인식되지 못하고 있던 당시 모리스는 국가은행 설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중앙은행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화폐가 귀금속으로 묶여있는 상황에서 해밀턴은 정부 공채가 신용을 창출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나치지만 않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국가부채를 단순히 나라의 짐이 아니라 국가 신용을 세우고 경제를 부흥시키는 자산으로 본 것이다.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의 수단으로 전후 경제부흥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실 현대의 화폐는 법적으로 인정된 거래의 수단이라는 점 이외에 정부 공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자를 지급한다는 측면에서 공채가 오히려 화폐보다 우월한 측면이 있다. 해밀턴은 적어도 한 세기는 앞서 중앙은행과 화폐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이 보편화된 시기는 해밀턴의 시대보다 한 세기나 뒤였다. 이제 정부 공채가 화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지출을 거시경제정책의 수단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재정 포퓰리즘이 극도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국가부채가 과도하게 쌓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2024년 자료를 보면 일본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각각 236.7%, 120.8%이고 주요 7개국(G7)의 경우에 평균이 126.0%였다. 정부부채가 점차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쌓이고 있으나 나서서 긴축을 주장하는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시적인 반도체 호경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부부채 비율이 2026년 하락하리라는 전망이 있으나 IMF는 2029년이면 우리의 정부부채 비율이 60%를 초과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정부부채 비율이 낮으나 증가 속도로 보면 어느 나라 못지않다. 일시적인 반도체 호경기로 조세수입이 증가하자 정부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 같다. 미래대응기금이라는 요상한 이름의 쌈짓돈을 마련한다고 한다. 국회의 감시도 받지 않고 야금야금 꺼내 쓰겠다는 것이다. 이제 국가부채는 부채일 뿐 신용이던 시대는 지났다.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부채는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의 씨앗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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