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버무린 영화들이 이런 논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몇 해 전 유명 아이돌 그룹 출신의 배우가 주연을 맡으며 화제가 되었던 <설강화>라는 드라마 또한 논란이 되었다. 극중 남파 간첩이 민주화 운동 참여 학생으로 오인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화 운동 열사들의 유가족 까지 나서서 촬영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지지한다는 명분 아래 아직도 그 시대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은 묵살됐다. 영화 <암살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북한에 의해 유린 된 사건이,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과 그 당시 국민들의 아픔이 ‘창작의 자유’의 라는 기치 아래 흐트러졌다.
‘한국 영화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말은 현재 대중문화 산업계에 흔히 나오는 얘기이다. 산업 체계의 여러 변화가 위기의 요인이기도 하지만, 관객인 대중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한국 영화에 재미와 감동이 없어졌다는 데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언제 부터인가 실제로 일어나는 역사나 사회적 사건을 다루는 한국 영화의 플롯은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소위 ‘성역화’된 사실들을 전복시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며, 수많은 비극들이 흥밋거리로 전락되거나 왜곡되고 있다. 실제로 그 사건 한가운데 있던 사람들은 아직도 현현한 아픔을 간직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관객들 또한 이런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카타르시스에 식상함을 느낀다.
우리는 ‘발칙함’과 ‘기발함’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나라와 시대의 아픔을 헤집는 것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창작은 기발한 것이 아니라 발칙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위선과 선동’, 그리고 ‘사회적 통감과 위로’가 설자리를 구분해야 한다. 50여 년 전 국가 지도자를 향해 일어난 총격 사건은 전자가 아닌 후자가 나서야 하는 비극이다. 윤리는 상상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에 감동과 여운을 입혀주는 날개옷이다. 오늘날 한국 영화의 위기가 스스로의 윤리와 상상력의 한계에서 비롯된 게 아닐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