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큰 문제는 과세의 대전제인 정확한 소득 파악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 거래소 매매는 국세청에 고스란히 노출되지만, 해외 거래소와 개인 지갑은 사실상 과세 사각지대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내 거래소 이용자에게만 부담이 집중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있다”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듯이 해외 거래소는 거래명세서 제출 의무조차 없다. 규정을 지킨 성실 납세자만 세금을 내고, 해외로 눈을 돌린 투자자는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다. 조세 형평이 아니라 조세 역차별이다.
국부 유출도 우려해야 한다. 세금을 피하려는 자금이 해외 거래소와 개인 지갑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국내 시장의 유동성이 마르고, 수수료 수입과 일자리, 기술과 데이터까지 함께 떠난다. 국내 거래소가 힘겹게 쌓아 온 투자자 보호 장치도 무력해진다. 규제 밖으로 밀려난 투자자는 해킹과 사기에 노출되기에 십상이다. 자칫 시장 자체를 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가상자산은 국경을 가장 쉽게 넘나드는 자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과세 설계도 허술하다. 연간 소득에서 250만원을 공제한 뒤 22% 세율을 매기는 구조인데, 기본공제는 주식에 비해 턱없이 낮고 손실이월 공제조차 없다. 올해 큰 손실을 보고 내년에 일부를 만회한 투자자도 내년 이익에는 꼬박꼬박 세금을 내야 한다. 에어드랍, 스테이킹, 탈중앙화금융(DeFi) 등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수익 모델에 대한 과세 기준도 모호하다.
순서도 뒤바뀌었다.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와 평가·공시 체계를 세울 2단계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기 규칙도 정하지 않고 입장료부터 받겠다는 격이다. 기본법이 있어야 자산별 성격이 구분되고, 거래소가 표준화된 취득가액과 시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달 국감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기본법 제정이 먼저라고 주문한 이유다.
해법은 국제 공조의 시간표에 맞추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에 따라 내년 첫 정보 교환에 나서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은 2029년에야 합류한다. 미국을 빼놓은 정보망으로는 해외 거래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없다. 박민규 민주당 의원 등 범여권 의원들이 과세 시점을 2029년 이후로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원칙에 가상자산도 예외일 수 없다. 거듭된 유예가 조세 신뢰를 흔든다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번에 과세를 다시 유예하더라도 단순한 과세 시점 연기에 그쳐선 안 된다. 기본법 제정, 손실이월 공제 도입과 공제 한도 현실화, 여러 형태의 수익에 대한 과세 기준 마련, 해외 거래 정보 확보 체계까지를 준비할 계획을 내놔야 한다.
제대로 준비 안 된 과세는 세수도, 형평도, 산업도 지킬 수 없다. lj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