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은 방어용’ 안일한 인식 심각
사즉생 각오로 대응체제 점검해야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이 욕설에 가까운 험담과 협박을 쏟아내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기세등등 열을 올리는 게 예사롭지 않다. 정부는 답답하리만큼 조심스럽다. 신중하게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는 정부의 대응이 영 마뜩잖다. 짐짓 단호한 표정으로 엄정 대응을 강조하지만 정작 내놓는 대책은 비례적 대응 정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공식화해도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갖은 유화책을 건네며 숨을 고르던 이재명 정부, 특히 통일부는 욕과 비아냥만 듣고 머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대한국 확성기들도 수일 안으로 대기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 김여정의 협박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가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하겠다는 조건부적 입장인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의 위협을 축소 또는 완화하려는 안이한 태도로 질타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국방부가 군사분계선(MDL) 불일치 문제 해소 등 현안 해결을 위한 남북군사회담을 재차 제안했지만 북한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남북관계가 최악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마 ‘관계’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은 헌법의 평화통일 구도를 역행한다. 대한민국이라고 불러줘 고마워할 일이 아니다. 통일 포기라지만 대한민국을 언제든 전쟁할 수 있는 적대국가로 대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재명정부’ 역시 관계개선, 평화를 제창하지만 본질상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유화적인 대북접근과 관련 한미동맹의 균열은 물론이고 남남갈등에 휘말리게 하려는 저의도 있을 것이다. 이 갑갑한 체크메이트를 타개할 길이 있을까. 정부는 트럼프만 바라보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길이 열린다 해도 한반도 운전자론은커녕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무망한 기대일 뿐이다.
적반하장 협박으로 남북 대치가 격화되고 대미 안보협력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것을 보며 정부의 안보외교정책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이념이나 신조가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미대사가 한미정보협력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과 미국이 일종의 터뷸런스(난기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 정보협력 균열, 대미 투자 지연 등으로 인한 한미관계 이상기류를 지적하는 예사롭지 못한 지경인데 정부는 별일 아닌 듯 이야기한다. 통일부 장관이 동맹 간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도 있고 한미동맹은 이상이 없다고 단언한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가 간에는 이견이 있기 마련이라며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고 확언한다. 북한이 핵무력정책법으로 핵 선제공격권을 법제화했는데도 대통령은 북핵을 ‘최후 방어무기’라고 말한다. 어쩌자는 것인가. 우리의 안위를 정부에 맡기고 과연 편히 살아갈 수 있을까.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단지 야당이나 언론에 의해 왜곡된 민심으로 치부하는 것이 온당할까.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이재명 대통령은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 최근 부쩍 자주국방, 주권을 강조한다. 동맹도 자주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동맹 없는 자주는 비현실적이다. 동맹 없이는 자주도 있을 수 없다. 철통 같아야 할 동맹이 추호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자주 자체가 흔들린다. 동맹파와 자주파 대립이란 범주 자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맞지 않는다는 시각도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이 전해주는 상황은 사뭇 다르다. ‘트럼프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대하는 자세를 보면 그야말로 섬뜩 뒷골이 당기지 않는가. 대한민국이 존재론적 위기에서 자유롭다 단언할 수 있을까.
싸울 필요 없도록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면 감히 싸우려 들지 못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사즉생(死則生)의 각오 없이는 안된다. 핵을 사용하면 공멸이고, 그 밖의 도발, 전쟁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기대효과에 비해 현저히 큰 희생과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만드는 접근이 필요하다.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에라스무스의 말은 그때 가서 읊어도 늦지 않다. 상황이 이처럼 엄혹한데 대통령이 지금 사사건건 야당이나 언론과 언쟁 벌일 때가 아니다. 오죽하면 그동안 굳건히 정권을 엄호해 왔던 정치9단 원로조차 ‘잠 좀 주무시고 대통령 언어를 썼으면 좋겠다’고 간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