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자본에 기대는 가상자산 수탁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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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고 25% 줄고 적자 2배 확대…전문 수탁사들 자본 확충 압박
시중은행부터 지방·특수은행까지 투자 확대…직접 진출 가능성은 규제 변수
금융그룹 편입 가능성도 거론…독립 수탁사 생존 모델 주목

▲가상자산 수탁업계의 수익성 악화와 은행권의 지분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시장 재편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디지털자산 수탁 및 보안 인프라를 형상화한 모습. (챗GPT)

국내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 시장에서 은행권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전문 수탁사들의 향후 사업 구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인 가상자산 시장 개방과 금융상품 도입에 대비해 은행들이 수탁사 지분을 확보하는 가운데, 수탁업계는 수익성 악화와 규제 대응 비용 증가로 자본 확충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전문 수탁사에 대한 지분 투자와 합작법인 설립 등을 통해 디지털자산 수탁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자본 참여가 확대되면서 전문 수탁사들이 독립적인 사업자로 성장할지, 장기적으로 금융그룹의 계열사나 자회사로 편입될지가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가상자산 수탁은 기업이나 기관이 보유한 가상자산을 대신 보관·관리하는 서비스다. 개인키 관리와 입출금 통제, 내부통제 및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구축 등이 핵심 업무로, 향후 법인과 기관투자자의 시장 참여가 확대되면 관련 인프라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 전문 수탁사 지분 투자 확대…금융권 자본 유입 본격화

▲국내 주요 은행 및 금융그룹의 가상자산 수탁업체 지분 투자·협력 현황과 2026년 상반기 수탁시장 주요 지표. (챗GPT)

실제로 은행권의 수탁시장 진출은 지분 투자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해시드와 공동 설립한 한국디지털에셋(KODA·코다)에 투자했으며, 코다는 지난해 11월 KB국민은행 등 기존 투자자와 한화투자증권·IBK캐피탈·교보증권 등이 참여한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도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투자한 이력이 있다. 특히 신한은행은 지난 9월 신한금융지주 차원에서 KDAC에 약 10%의 추가 지분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신한은행의 KDAC 지분율은 올해 6월 기준 2.23%로, 추가 투자가 이뤄질 경우 금융그룹과 전문 수탁사 간 자본 관계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우리은행은 비댁스(BDACS)에 지분을 투자하고 디지털자산 분야의 사업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투자금액과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나금융그룹은 글로벌 디지털자산 수탁기업 비트고와 설립한 비트고코리아의 지분 24.7%를 보유하고 있으며, 비트고코리아는 지난 8월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수리를 완료했다.

시중은행뿐 아니라 지방·특수은행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Sh수협은행은 지난 8월 인피닛블록 지분 14.95%를 확보해 기존 투자자인 iM뱅크와 공동 2대 주주에 올랐다. 두 은행의 합산 지분율은 약 30%로, 인피닛블록은 금융권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기관 대상 수탁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수탁고 줄고 영업적자 확대…보안·규제 비용에 자본 부담 가중

반면 국내 가상자산 수탁업계의 수익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지난 1일 발표한 '2026년 상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갑·보관업자 9개사의 총수탁고는 올해 6월 말 기준 2304억원으로 지난해 말 3071억원 대비 2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지갑·보관업자의 영업손실은 지난해 하반기 93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86억원으로 두 배가량 확대됐다. 조사 대상 사업자에 변동이 있어 직접적인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지만, 가상자산 보관업계의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수탁업계는 콜드월렛 보관시설과 하드웨어 보안 모듈(HSM), 정보보호 및 내부통제 시스템 등 초기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사업 운영 과정에서도 보안설비 유지와 전문인력 확보, 보험 가입 등에 지속적인 지출이 발생하는 구조다.

규제 대응 부담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월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정보법령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의 재무건전성과 대주주 관련 신고 심사 기준이 강화됐다. 금융당국이 사업자의 재무 상태와 조직·인력, 내부통제체계 등을 구체적으로 심사하면서 사업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수탁업계의 자본 확충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권의 지분 참여는 자금 조달과 기관 고객 확보를 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은행 입장에서도 기존 전문 수탁사가 확보한 보안 인프라와 블록체인 운영 경험을 활용하면 자체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업계선 금융그룹 편입 가능성도…은행 자본력·신뢰도 주목

장기적으로는 은행 중심의 시장 재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상자산 수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수탁사업에서는 기술적 역량뿐 아니라 사업자의 브랜드 신뢰도와 자본력이 중요한 경쟁 요소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기존 금융 고객 기반과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향후 직접적인 시장 참여가 확대되면 일부 전문 수탁사가 금융그룹의 계열사나 자회사로 편입되는 구조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금융기관이 현재와 같은 소수 지분 투자에서 나아가 지분율을 확대하거나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도 장기적인 선택지로 거론된다. 다만 이는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전망으로, 개별 수탁사의 실제 인수합병이나 금융그룹 편입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은행 직접 수탁은 금가분리 규제 변수…전문 수탁사 독립 생존 가능성도

행의 직접 수탁시장 진출에도 제도적 과제가 남아 있다. 2017년부터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관련 사업 참여를 제한해 온 이른바 '금가분리(금융과 가상자산의 분리)' 원칙과 은행법상 지분 보유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법 제37조는 은행의 다른 회사 의결권 있는 지분 보유를 원칙적으로 15%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나,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예외적으로 초과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은 관련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5월 금융회사의 가상자산시장 참여 제한을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과 연계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진출 확대가 반드시 전문 수탁사의 독립성 상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은행이 기관 고객 확보와 금융서비스 제공을 담당하고, 전문 수탁사는 개인키 관리와 블록체인 네트워크 운영 등 기술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협력 모델도 가능하다.

향후 금가분리 완화 범위와 법인 가상자산 거래 허용,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등에 따라 양측의 협력 관계도 달라질 전망이다. 은행권의 자본력과 전문 수탁사의 기술력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들이 독립적인 금융 인프라 기업으로 성장할지, 금융그룹 내부로 편입될지는 관련 제도 정비와 기관 수탁 수요 확대 여부에 따라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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