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10여 일 전까지만 해도 대만 증시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AI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가권지수는 10월 6일 장중 4만9968.92포인트까지 상승하며 사상 처음 5만 포인트 돌파를 눈앞에 뒀다. 전날 TSMC도 2575대만달러에 마감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올해 TSMC 주가가 크게 상승하면서 대만 증시 역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시장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10월 13일 가권지수는 하루 960포인트 넘게 떨어졌고, 15일에는 다시 1656포인트 급락해 4만6969포인트까지 내려왔다. 최근 거래일인 16일 지수가 소폭 반등했지만 TSMC는 2420대만달러로 하락했다. 5만 포인트를 눈앞에 뒀던 시장이 불과 열흘 만에 상당 폭 조정을 받은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하락이 기업실적 악화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TSMC가 15일 발표한 3분기 매출은 1조4942억 대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0.9% 증가했고, 순이익은 7631억 대만달러로 68.7% 늘었다. 매출과 순이익 모두 사상 최고치였다. AI 반도체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사실을 숫자로 확인시켜준 셈이다.
그런데도 실적 발표 다음 날 TSMC 주가는 추가 하락했다. 왜일까. 현재 시장의 고민은 AI가 성장하느냐가 아니다. AI의 성장은 이미 상당 부분 예상돼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성장이 현재 주가에 반영된 높은 기대를 계속 뛰어넘을 수 있느냐이다.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세계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엔비디아의 GPU 수요가 늘고, 이를 생산하는 TSMC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AI 투자가 언제부터 충분한 수익을 만들어낼 것인가. AI 인프라 투자 증가율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최근 AI 관련주의 변동성이 커진 배경에도 이러한 고민이 있다.
대만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10월 초 TSMC 한 기업이 대만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1%에 달했다. 10월 5일 TSMC 주가가 하루 75대만달러 상승했을 때 한 종목이 가권지수를 약 595포인트 끌어올렸다. AI 기대가 커질 때 TSMC가 시장 전체를 끌어올리지만, 반대로 기대가 흔들릴 때 충격 역시 증시 전체로 빠르게 전달되는 구조다.
그렇다고 대만의 AI 증시를 TSMC 하나로만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최근에는 TSMC에서 시작된 AI 수요가 반도체 패키징, AI 서버, PCB, 전력, 냉각 등 주변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TSMC가 조정을 받은 최근 거래일에도 일부 PCB와 AI 관련 종목들은 강한 반등을 보였다. 지난 칼럼에서 설명했듯 대만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은 TSMC 한 기업이 아니라 TSMC를 중심으로 연결된 생태계에 있다. 이제 그 산업생태계가 주식시장에서도 AI 투자생태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대만 증시의 조정을 곧바로 ‘AI 버블의 붕괴’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TSMC의 실적을 보면 AI 반도체에 대한 실물 수요는 여전히 강하다. 다만 주식시장은 기업실적 그 자체가 아니라 실적과 기대의 차이에 반응한다. 아무리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더라도 투자자들이 이미 그보다 더 높은 성장을 기대했다면 주가는 떨어질 수 있다.
앞으로 대만 증시를 볼 때도 질문은 TSMC 주가가 다시 최고치를 넘어설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TSMC와 AI가 만들어낸 성장이 얼마나 많은 대만 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느냐이다. TSMC 한 기업이 지수를 5만 포인트로 끌어올리는 시장과 TSMC에서 시작된 AI 수요가 수십, 수백 개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되는 시장은 전혀 다르다.
AI 시대 대만 증시의 진짜 시험대는 이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사상 최대 실적에도 흔들리는 TSMC 주가는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AI 산업의 성장과 AI 주식의 상승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시장이 평가할 것은 AI가 성장하느냐가 아니라, 그 성장이 지금의 높은 기대를 얼마나 오랫동안 뛰어넘을 수 있느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