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獨 이해관계 달라 공동대응 진통
美와 연대 통해 반전 기회 모색해야

영국으로서는 치욕의 사건이었지만, 약 50년 뒤 아편전쟁으로 청나라의 자존심을 무너뜨렸고, 연이어 프랑스와 독일도 청나라로부터 불평등 무역조약을 얻어냈다. 중국은 힘이 부족해 일방적으로 수탈당했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기나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였다. 이후 2001년 WTO 가입으로 서방 질서에 편입되기까지, 중국은 줄곧 미국과 유럽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국을 향한 미국의 압박이 철저히 상업적이었다면, 유럽은 자신의 규칙을 따르라며 가르치려 들었다.
21세기도 이제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유럽과 중국의 상황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2026년 유럽은 매일같이 10억 달러의 제품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지만, 중국에 팔만한 제품은 점점 줄어든다. 건륭제의 말대로 중국은 모든 물건이 남아돌아 유럽에서 만든 물건은 필요 없는 지경이다. 2000년대 중국 중산층의 로망이었던 폭스바겐, 중국 부유층의 상징이었던 벤츠마저 이젠 중국 시장에서 기를 못 편다.
유럽이 중국과의 대결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이유는 2024년 발표된 EU 집행위원회의 ‘유럽 경쟁력의 미래(The future of European competitiveness, 일명 드라기 보고서)’에 잘 나와 있다. 우선, 유럽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경쟁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경제성장 속도와 다양한 혁신 지표에서 미국에 뒤처지고 있음에도 이를 개선하지 않았고, 중국의 추격도 애써 무관심했다. 한번 기술경쟁에서 뒤처지고 나니 이제 추격은 요원하다.
둘째, 유럽이 숭고한 ‘가치’를 부여한 탄소중립 정책이 유럽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전기자동차, 풍력발전기, 태양광 등 친환경 액션플랜을 실행할 핵심 산업 제품이 중국기업의 차지가 되었다. 19세기 초 중국산 사치재 구매를 위해 청나라에 은 덩어리를 지불한 것처럼 21세기 초 유럽의 기업과 소비자는 막대한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중국산 친환경 제품을 사들이며, 스스로의 가치 소비에 위안을 얻는다. 이제 유럽은 중국산에 길들여졌다.
드라기 보고서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무장한 중국을 기존 자유무역 원칙으로는 상대할 수 없으며, EU 공동의 강력한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U는 2024년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35.3%의 추가 상계관세를 매겼다. 전기차가 막힌 중국이 하이브리드로 우회하자, 올 10월 허겁지겁 연간 35만 대의 수입 쿼터 장벽을 쳤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 조치로는 거대한 중국산의 물결을 거스르기 어렵다.
문제는 유럽이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전기차 관세에서 하이브리드 규제에 이르기까지, 자국 산업 보호가 시급한 프랑스는 강경한 제재를 이끌려 하지만, 중국시장 의존도가 높은 독일과 완성차·배터리 공장을 유치한 헝가리는 보복을 우려해 번번이 제동을 걸고 있다. 나라별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결과적으로 중국에 유럽시장을 공략할 여지만 내주는 상황이다. 중국 역시 유럽 대륙을 단일한 협상파트너로 대하지 않고, 개별 국가를 각개전투식으로 상대하는 전략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0월 7일 유럽 문명의 상징인 그리스 아크로폴리스를 배경으로 한 연설에서 유럽이 이상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권위주의 국가와의 대결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나 규범 같은 고상한 이상주의에 빠져 기술 패권과 공급망이 곧 안보가 된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서구 문명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유럽이 공동의 체제 경쟁자인 중국에 맞서자는 의미이다. 각자의 이해관계로 쪼개진 유럽이 독자적으로 중국의 거대한 산업 공세를 막아내기란 이미 벅찬 현실이다. 미국과의 연대를 통해 유럽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