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북송의 문장가 구양수(歐陽修)는 ‘고와연(古瓦硯)’이라는 시에서 오래된 기와로 만든 벼루를 노래하였다. “於物用有宜 不計醜與姸(어물용유의 불계추여연)” 사물에는 저마다 알맞은 쓰임이 있으니, 추하고 아름다운 외형을 따질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금과 옥처럼 귀한 재료가 아니더라도 먹을 가는 데 제 역할을 다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豈惟瓦礫爾 用人從古難(기유와력이 용인종고난)”<사진> 어찌 기와 조각만 그러하겠는가.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쓰는 일은 예로부터 어려웠다는 것이다. 낡은 기와 한 조각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어려움까지 생각을 넓힌 구양수의 안목이 돋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충남 보령의 남포벼루가 예부터 좋은 벼루로 알려져 있다. 단단하면서도 먹이 잘 갈리는 돌의 성질과 소박하고 단아한 품격은 우리 문방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돌을 다듬어 벼루를 만들어 온 장인들의 정성 또한 그 속에 깃들어 있다.
좋은 벼루는 반드시 값비싸거나 화려할 필요가 없다. 먹이 부드럽게 갈리고 먹빛이 고르게 살아나며 사용하는 사람의 손에 익숙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랜 세월 곁에 두고 사용하다 보면 비록 이름 없는 벼루일지라도 쉽게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 된다.
오늘날에는 먹물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천천히 가는 시간은 여전히 특별하다. 먹이 풀리면서 짙은 먹빛이 만들어지는 동안 마음도 차분해지고 붓을 들기 전에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먹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그 순간은 어쩌면 글씨를 쓰기 이전에 마음을 먼저 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를수록 새롭고 편리한 것들이 넘쳐나지만, 오래 곁에 두고 손때를 묻혀가며 사용하는 물건의 가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벼루 위에서 먹을 갈며 생각한다. 좋은 글씨가 붓끝에서 태어난다면, 그 글씨를 낳는 고요한 마음은 어쩌면 벼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