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액자뷰'부터 용산공원 둘레길 코스까지...체험문화공간으로 변신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이 박제된 유물을 관람만 하는 수동적 공간을 넘어 오감 체험과 자연 휴식이 공존하는 도심형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14일 오후 3시부터 두 시간여 둘러 본 국중박은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확대, 대중 눈높이에 맞춘 유쾌한 기획과 쉬운 설명, 야외 명소화가 맞물리며 평일에도 관람객들로 문전성시였다.

국중박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역사의 길'에 설치된 8m 높이의 미디어월은 실물 크기 광개토대왕릉비와 한·영 해석본을 송출하며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폭 60m, 높이 5m 규모의 3면 파노라마 스크린을 갖춘 '디지털 실감 영상관 1관'에서는 '금강산에 오르다' 등 7종의 영상이 청각 효과와 함께 요일별로 교차 상영된다.

상설전시실 역시 조선실 수표 위에 물 높이 영상이 흐르고, 대한제국관 벽면에는 개화기 풍경이 투사된다. 딸과 함께 방문한 김희옥(58) 씨는 "그냥 보는 것보다 디지털로 보고 들으니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2층 '명품실감'에서는 100인치 터치스크린으로 소장품을 360도 회전해 볼 수 있다.

특히 가상현실(VR) 체험관은 연일 전 시간대 매진을 기록 중이다. 현장 학습을 온 김세연 씨는 "진작 예약하고 올 걸 그랬다"며 아쉬움을 전했고, 국중박 관계자는 "당일 실시간 취소 표를 공략하면 예약이 수월하다"고 귀뜸했다. 전시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되며, 수·토요일은 야간 개장으로 오후 9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엄채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관람객에게 다가가고자 박물관 디지털화를 고민하고 있다"며 "내년 1~2월 론칭을 목표로 반구대 암각화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 중"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와 가족 단위 관람객을 겨냥한 친화 전략도 적중했다. 305관에 전시된 '백자 잉어모양 연적'은 '2026 국중박 분장놀이' 대상 수상자가 활용해 SNS와 방송에서 화제를 모으자, 수장고에 있던 유물을 22일까지 긴급 편성한 사례다. 아내와 함께 방문한 김영수(50대·가명) 씨는 "방송에서 분장놀이 대상 수상자를 보고 실제 모습이 궁금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유물 안내 패널도 전면 손질해 기존 한자어 표기인 '호우명 그릇'을 '호우라는 글자가 있는 청동그릇'으로 풀어냈다. 관람객 성해원(29) 씨는 "예전 교과서 표기만으로는 청동 그릇인지 알기 어려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훨씬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감1관에서 영상을 관람하던 한연준(8·가명) 군 역시 "진짜 물건보다 멋지고 재미있다"며 호응을 보였다.

국중박 전시동 사이 열린마당은 건축물 프레임 너머로 남산과 N서울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는 '액자뷰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전문 사진 촬영객뿐 아니라 수학여행단과 시니어 층의 휴식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으뜸홀 입구 주변 벤치와 계단에는 전시 입장 여부와 관계없이 도심 전경을 즐기려는 인파가 몰리는 추세다.
열린마당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던 손병락(81) 씨는 "집에서 30분 거리라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경치를 보러 자주 온다"며 "현대적 감각과 고전미가 어우러져 웅장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서 수학여행을 온 박지원(15)ㆍ김보민(16) 양은 "SNS에서 유명해 찾아왔는데,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박물관에 올 이유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으뜸홀 입구의 안내원 김민섭 씨는 "입사 전 이 풍경을 보고 근무를 희망했을 정도"라며 "전문 사진가부터 풍경만 보러 오는 시민까지 방문 목적이 다변화됐다"고 설명했다.

야외 호수인 거울못과 전통 정자 청자정이 자리한 미르정원은 도심 속 산책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인 관광객 숀(52)과 로즈(50)는 "박물관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 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감탄했다.
국중박의 이런 조경은 해외 전문가의 눈에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호주에서 온 도시계획가 에빈(26)은 "현대식 박물관 건축과 전통 건축이 조화를 이룬 이색적인 장소"라고 호평했다.
전면 개방된 용산어린이정원 및 용산가족공원과 맞닿아 있어 인근 주민들의 일상 산책로로도 활용된다. 국중박에 인접한 이촌동의 한 주민은 "미군기지 개방 이후 산책로가 쾌적하게 연결돼 매일 찾는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이달 22일 오전 10시 30분 용산도시기억전시관을 출발해 버들개 문화공원, 서빙고 근린공원, 국중박 미르정원, 용산공원 장교 숙소 5단지를 잇는 '2026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 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한다. 참가는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시스템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