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조동근 칼럼] ‘물귀신’ 본색 드러낸 노란봉투법

기사 듣기
00:00 / 00:00

‘삼바’ 노조, 전자에 단체교섭 요구
1대 아닌 2대 주주 특정 ‘견강부회’
그룹경영 사용자성 강요 옳지 않아

기업은 ‘자체생산(self make)’을 하거나 ‘시장구매(market buy)’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자동차 회사는 핵심부품인 엔진은 자체생산하고 타이어는 원가 절감을 위해 시장구매를 통해 조달한다. 이때 타이어를 시장에서 구매하느니 ‘도급계약’을 통해 공장부지 한편에서 제작해 장착하는 것이 저렴할 수 있다. 도급계약은 민법상 ‘일정한 목적물을 완성하기 위한 거래 계약’이므로 원청은 하청 근로자의 사용자가 아니다. 따라서 도급계약에 의한 조달은 ‘시장구매’에 해당한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사실상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로 그 범위를 확대했다. 따라서 타이어 제조 하청근로자는 원청을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당사자로서의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사용자성(性)’이 인정되면 사용자로 의제(擬制)한다. “데이트+프로포즈+혼인신고”를 해야 정식 부부가 되지만 노란봉투법은 “데이트만 해도 부부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사용자성이 인정되니 사용자로서 ‘내 생계를 책임지라’고 윽박지르는 꼴이다.

2026년 10월 6일,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노동조합은 삼성전자에 단체교섭 요구서를 발송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삼성바이오 노동조합이 삼성전자를 법률상 ‘사용자’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면서 직접 단체교섭을 요구한 것이다.

삼성바이오 노조는 “삼성전자가 인사와 보상제도를 실질적으로 결정해 왔다면” 직접 고용관계가 없어도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노란봉투법의 ‘사용자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번 사태 이면(裏面)에는 임금과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있었다. 삼성바이오 노조는 기본급 인상 9.5%를 요구했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했으며 노사협상은 결렬됐다. 노조는 삼성바이오 경영진과의 교섭만으로는 핵심적인 인사·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삼성바이오 경영진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삼성전자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의 최대주주는 삼성물산(43.06%)이며, 삼성전자는 31.22%를 보유한 2대 주주이다. 삼성바이오 노조는 1대 주주도 아닌 2대 주주에게 “당신이 사용자이니 나를 책임지라”는 것이다. 이는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아닐 수 없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전자의 관계는 앞에서 설례(設例)로 들었던 타이어 생산 같은 통상적인 도급계약의 ‘원청·하청’ 관계도 아니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전자는 엄연한 독립기업이다. 즉 원·하청 관계가 아니다. 삼성전자가 2대 주주로서 계열사 인사제도에 관여했다손 치더라도 이를 근거로 사용자라고 볼 수는 없다. 기업집단에서는 계열사 간 인사정책, 보수 수준, 핵심인력 육성방식 등에 관한 정보 공유와 협력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통칭 ‘그룹경영’으로 칭해진다.

이러한 협력이 ‘법적 사용자성’을 뜻한다면 기업집단의 공동 경영지원 기능 자체가 단체교섭 의무를 발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개나 소나 모두 ‘사용자’가 되고 1년 내내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 삼성전자는 ‘사업지원실’이 계열사의 현황을 공유받고 경영 자문을 제공하는 조직일 뿐, ‘계열사 경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룹의 전략적 의사결정만으로 실질적 사용자성이 인정되기는 어렵다. 삼성바이오 노조가 “1대 주주를 제치고 삼성전자의 승인을 받지 않고서는 삼성바이오 경영진이 근로조건을 독자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 이는 억지인 것이다.

삼성바이오는 자체 생산시설과 경영조직을 보유한 별도의 상장회사이다. 임금결정은 생산성, 인력 수급, 산업 경쟁, 투자계획 및 장기 수익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이뤄진다. 독립적인 이사회와 경영진이 인사·보상을 결정해 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삼성전자에 대한 교섭 요구의 근거는 와해된다.

이번 사건은 노란봉투법이 당초 주로 논의되었던 원청·하청 관계를 넘어 같은 기업집단에 속한 독립 법인들 사이의 노사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노란봉투법은 ‘물귀신법’이 되고 만다. ‘주주로서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사용자로서 구체적인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하는 것’으로 몰아붙여서는 안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