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이야기 함께 만드는 시장 ‘AI 캐릭터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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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 스스로 창작하는 경험에 환호
콘텐츠수급 바꿔 새 성장동력 부상
선정성 관리등 어려운 과제 풀어야

푸르게 빛나는 휴대폰 대화창 속에 멋진 청년이 나타난다. 몰락한 제국의 황태자 ‘카엘’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은 그를 반역자로 몰아 궁궐에서 내쫓는다.

다시 마주한 카엘이 묻는다. “날 버린 이유를 이제 말해줄 건가.” 손가락은 다시 황녀의 목소리를 빌려 대답한다. 카엘은 화를 내다가 이내 손을 내민다. 이용자는 작가가 되어 직접 이야기를 만든다.

인공지능 캐릭터 챗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앱 분석 회사 앱피겨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수익을 내는 인공지능 캐릭터 앱 337개 가운데 128개가 지난해 출시됐다. 시장 규모는 1억2000만달러(약 162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25년 기준, 성장 폭은 전해에 비해 두 배를 넘었다.

캐릭터 챗은 친구, 연인, 상상 속 인물 등 의인화된 맞춤형 캐릭터를 경험하게 한다. 이용자는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캐릭터 또는 자신이 직접 만든 캐릭터와 대화를 이어 나간다.

말줄임표가 깜빡이다 질문이 도착하면 답장을 보낸다. 거듭되는 대화는 실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생생하다. 국내에서는 스캐터랩의 ‘제타’, 벙커키즈의 ‘위프’가 대표적이다.

‘제타’는 가입자 600만 명을 넘겼다. 올해 2월 사용 시간은 챗GPT의 두 배를 웃돌았다. 지난해에는 매출 약 260억원으로 첫 흑자를 냈다. ‘위프’는 지난해 월 400만원이던 매출이 1년 만에 월 40억원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에는 150억원의 투자도 받았다. 결제 이용자는 하루 평균 217분 동안 머문다. 유튜브 평균 체류 시간 139분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다.

이런 서비스가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음성 메시지를 들으려고 유료 ARS 전화를 걸었다.

일본에서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생명체를 돌보는 ‘다마곳치’는 세계로 팔려 나갔다. 2000년대 초 채팅 로봇 ‘심심이’는 청소년의 말동무가 됐다. 2020년 ‘버블’은 아이돌과 직접 대화하는 듯한 경험을 구독 상품으로 만들었다.

모두 ‘개인적 경험’를 파는 서비스다. 캐릭터 챗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위프’의 주 고객은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과 웹툰을 즐겨 보던 독자층과 겹친다. 회귀, 빙의, 환생 같은 익숙한 설정이 대화창 안으로 그대로 옮겨 왔다. 독자는 웹소설과 웹툰에서나 보던 이야기를 스스로 창작하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학자 도널드 호턴과 리처드 월은 이런 경험을 ‘유사 사회적 상호작용’이라고 불렀다. 예컨대 방송 진행자가 말을 건네는 형식이 시청자에게 실제로 마주한 듯한 친밀감을 준다는 것이다. ‘버블’은 아이돌이 구독자 전체에게 보낸 메시지를 1대1 채팅처럼 받아 보는 구조다. 한 사람이 응답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버블’의 국내 구독자는 200만 명 안팎에서 정체돼 있다. 캐릭터 챗은 이 벽을 없애 버렸다. 캐릭터는 지치지도 잠들지도 않고, 오직 나의 말에만 반응한다.

이야기를 즐기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은 작가가 짜 놓은 이야기를 ‘읽는’ 데 그치지만, 캐릭터 챗은 인물과 세계관을 빌려와 다음 장면을 만드는 능동적 ‘체험’이다. 같은 캐릭터라도 이용자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니, 하나의 캐릭터에서 수백만 갈래의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셈이다.

‘제타’에는 이용자가 만든 캐릭터가 450만 개 넘게 등록돼 있다고 한다. 창작자와 향유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기존의 지식재산(IP)을 대화형 콘텐츠로 넓히는 일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웹툰과 웹소설로 IP 경쟁력을 증명한 한국은 이 흐름에서 유리한 자리에 서 있다.

물론 그림자도 짙다. 하루 세 시간이 넘는 대화는 몰입이자 의존의 신호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캐릭터와의 대화에 빠졌던 14세 소년이 숨진 뒤 소송이 제기됐다. 2021년 ‘이루다’는 개인정보 무단 활용과 혐오 발언 논란으로 서비스를 멈췄다. 이용 시간을 곧 성과로 보는 관점은 이용자의 고독감을 수익으로 바꾸는 구조를 정당화하기 쉽다.

따라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붙잡아 둘까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건강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도록 이끄는 설계가 필요하다. 미성년자 보호, 선정성 관리, 원작 IP에 대한 보상 체계는 산업이 커질수록 무거운 과제가 될 것이다.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경험은 삶을 해치지 않으면서 창조와 상상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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