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가 못 본 삶의 조건 끄집어내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 질문 던져

1968년, 마흐붑 울 하크는 카라치에서 연단에 올라 자신이 만든 성장 모델을 무너뜨렸다. 21년 뒤 그는 그 성장의 대가를 감춰 온 숫자를 대체하는 일에 나섰다. 그의 작업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이야기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할 새로운 대목이었다.
그해 4월, 파키스탄 정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정부는 지난 10년을 ‘개발의 10년’이라 불렀고, 그 이름을 정당화할 수치도 갖고 있었다. 경제는 연 3% 안팎의 성장에서 7%에 가까운 성장으로 올라섰다. 외국 경제학자들이 그 비결을 연구하러 날아왔다. 그 일의 대부분을 해낸 사람은 기획위원회 수석경제학자인 마흐붑 울 하크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전국을 돌며 바로 이 정책들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인물이었다.
그날 카라치에서 그는 연단에 올라 그 정책들을 무너뜨렸다. 22개 가문이 국가 산업자산의 66%, 그리고 은행과 보험의 약 80%를 장악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성장은 진짜였다. 그는 자신의 셈법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셈법이 모두가 믿고 있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묘사해 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바깥에서 뛰어든 비판자가 아니었다. 건축가가 자기 건물 안에 서서, 기초가 도면에 그려진 자리에 있지 않다고 좌중에 말하는 장면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날 일을 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그 뒤 그가 이루어낸 모든 것은 그날 오후에서부터 비롯됐다.
21년 뒤, 하크는 정부 밖에 있었고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기관은 없었다. 1989년, 로버트 맥나마라의 권유로 그는 유엔개발계획(UNDP)을 이끌던 윌리엄 드레이퍼를 찾아갔다. 첫 면담은 실패했다. 두 번째 면담이 서둘러 잡혔고, 그 자리에서 드레이퍼의 지원을 얻어냈다. 오늘날 100개국의 정부 부처가 우선순위를 정할 때 참조하는 도구는, 그 방에서 한 번 거절당했고 두 번째 약속 덕에 살아남았다.
다음으로 하크에게 필요한 사람은 아마르티아 센이었다. 두 사람은 1950년대 중반 케임브리지 시절부터 알고 지냈고, 30년 동안 서로 논쟁하며 그것을 즐겼다. 센은 핀란드에 살고 있었다. 하크는 여름 내내 그에게 전화를 걸어, 국내총생산(GDP)에 맞설 단일한 수치를 함께 만들자고 청했다.
센은 거절했다. 인간의 삶을 소수점 하나로 압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대화가 놀라운 것은 하크가 그 말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그는 지수가 정확하다고 옹호하지 않았다. 하크가 원한 것은, 그 자신의 표현으로, GDP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저속한 숫자이면서도 GDP처럼 인간 삶의 사회적 측면에 완전히 눈감지는 않는 숫자였다. 그런 숫자가 없다면, 사람들은 개발에 대한 충실한 설명에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결국엔 다시 GNP를 찾게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조잡한 수치가 쓰기에는 편리하기 때문이다. 센은 자신의 지적을 이미 인정한 하크에게 결국 논쟁에서 지고 말았다.
한 수가 더 있었다. 그것은 하크가 평생 둔 가장 영리한 수였다. 그는 결과물을 유엔의 문서가 아니라 독립된 보고서로 발간하도록 드레이퍼를 설득했다. 회원국들은 유엔 문서를 손대고 편집할 수 있지만, 이 보고서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는 ‘무기’를 완성했고, 그것을 발사하기 전에 주위에 단단히 벽을 쌓아 방어막을 친 셈이었다.
첫 ‘인간개발보고서’는 1990년에 나왔다. 첫 문장은 애덤 스미스의 책 제목을 빌려 와 뒤집은 것이었다. ‘사람이야말로 국가의 진정한 부(富)’라는 것이다.
인간개발지수(HDI)는 세 가지를 하나의 수치로 통합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사는가, 얼마나 교육받는가, 얼마를 버는가. 이 지수는 GDP 옆에 나란히 서서 GDP와는 다른 의미를 보여줄 수 있었다. 실제로 첫 보고서는 두 지수가 어디에서 서로 의미가 달라지는지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1인당 GNP 400달러의 스리랑카는 기대수명 71세, 성인 문해율 87%였다. 1인당 6200달러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기대수명 64세, 문해율 55%였다.
〔표〕 1990년 인간개발보고서. 영아 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사망자 수.

소득 열을 위에서 아래로 읽은 다음, 그 옆의 열을 읽어 보라. 같은 보고서의 다른 곳을 보면 쿠웨이트는 스위스보다 인구당 의사 수가 많았고, 영아 사망률은 네 배였다.
보고서는 이름을 거명했다. 스리랑카, 칠레,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탄자니아, 태국은 소득 순위보다 인간개발 순위가 훨씬 높았다. 오만, 가봉,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모리타니, 세네갈, 카메룬, 아랍에미리트는 훨씬 낮았다. 130개국이 목록에 올랐고, 두 순서는 일치하지 않았다.
이제 장관에게는 두 개의 숫자가 생겼다. 정책결정 때 두 번 참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레이퍼는 1990년 보고서의 서문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 자유의 물결이 많은 나라를 휩쓸고 있다는 말로 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여섯 달 뒤였다. 그리고 같은 책 안에는 고백 하나가 묻혀 있었다. 인간의 자유를 재는 간단한 정량 지표는 아직 설계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91년, 그들은 하나를 설계했다. 영국의 한 분석가가 이미 만들어 둔 40개 자유 항목 조사를 바탕으로 급히 조립했고, 원래 4단계였던 척도를 무딘 ‘예/아니오’로 채점했다. 보고서는 방법을 간명하게 밝혔다. 자유가 보장되면 1, 침해되면 0.
이 평면화가 지수를 망가뜨렸다. 조사 대상 88개국 중 40개 자유를 모두 지키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표의 맨 위에 있던 스웨덴과 덴마크도 각각 두 항목에서 감점됐다. 그리고 여성의 정치적·법적 평등 항목에서는, 당시 표를 검토한 평자들이 확인한 바, 모든 나라가 0점을 받았다. 그 항목만 놓고 보면, 자유로운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지수가 스웨덴과 이라크가 같은 곳이라고 보고한 셈이었다.
게다가 데이터는 1986년 1월 1일에 동결되어 있었다.
드레이퍼가 쓴 1991년 보고서의 서문은 그 10년이 시작될 때의 희망의 물결로 문을 연다. 동유럽과 소련을 휩쓰는 민주주의, 무너진 베를린 장벽, 재통일된 독일. 그로부터 스무 쪽 뒤, 표는 여전히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 점수를 매기고 있다.
40점 만점의 그 표, 상위와 하위를 그대로 옮긴다.
〔표〕 인간자유지수, 1991년 인간개발보고서. 1986년 1월 1일 기준 데이터

동독은 보고서가 인쇄에 들어가기 일곱 달 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소련은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사라질 터였다. 지수는 그 나라들 중 몇몇에 작은 플러스 기호를 붙여 1985년 이후 무언가 움직였음을 표시했고, 점수는 그대로 두었다.
18개국이 고자유 집단에 들었다. 그중 17개국이 부유한 서방 국가였다. 예외는 코스타리카였다.
반응은 단순히 학술적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이 순위를 발간한 기관은 연간 10억달러가 넘는 보조금을 배분하는 곳이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 지수가 인종적으로 편향됐다고 했다. 중국은 이 기관에 이념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 128개국을 대변하는 77그룹은 지수 폐기를 요구했다.
실제 결함이 있던 점수 산정 방식을 공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정치를 공격했다. 숫자란 바로 그런 것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대목은 여기다. 하크가 센에게 편 논거의 전부는, 오직 단일한 수치만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는 옳았다. 보고서의 200쪽짜리 분석을 두고 싸운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숫자 한 열(순위)을 두고 싸웠다. 바로 그 부분이 힘을 발휘하는 유일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은 곧장 거센 화살이 되어 하크 자신을 향해 되돌아왔다.
지수 자체도 끝내 안정되지 못했다. 이미 부유한 나라에서 1달러가 더 늘어나면 얼마만큼으로 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20년 동안 답해지고 또 답해졌다. 소득 항목의 처리 방식만 해도 1990년과 2010년 사이에 거듭 다시 쓰였다. 딱딱한 상한선에서, 일정 기준 이상에서 점점 가팔라지는 할인으로, 로그로, 그리고 마침내 상한선 없음으로. 각각의 답은 옹호할 수 있었고,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어느 것도 불가피하지 않았다. 누군가 선택했고, 나라 안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순위가 오르내렸다.
그러나 더 깊은 공백은 셈법이나 수치 자체에 있지 않다. 세 차원이 무엇을 묘사하는지 보라. 셋을 합치면 한 사람에게 실제로 열려 있는 삶의 범위가 그려진다. 그것을 측정한 것은 어렵게 얻어낸 성취이며,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두 도구 사이에 있다. GDP는 인간의 삶의 조건을 재지 않고 창출과 생산을 잰다. 인간개발지수는 생산을 재지 않고 인간 삶의 조건을 잰다. 어느 쪽도 이 둘이 서로 관련이 있는지 묻지 않는다.
두 경제체제를 떠올려 보라. 첫 번째 경제에서 사람들은 쉼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새 기업, 새 제품,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들. 하지만 지쳐 있고 불안하며 자기 삶이 잘 굴러간다고 말하지 못한다. 두 번째 경제에서 사람들은 건강하고 교육을 잘 받았으며 안락하지만, 누구도 새로운 것을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 둘 다 우리가 현재 관리하는 지표상으로는 그럴듯한 수치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당신이 택할 곳은 아니다.
각각의 경우에서 실패는 수치가 모자라서 오는 것이 아니다. 관계성(연결고리)이 빠져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쿠즈네츠가 자신이 만드는 데 일조한 숫자의 한계를 경고한 지 90년, 질문은 더 이상 GDP로 충분한가가 아니다.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안다. 심지어 인간개발로 충분한가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숫자가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제대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지금 빠져 있는 것은 두 숫자 옆에 나란히 놓을 ‘제3의 숫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두 숫자 모두 잴 수 없는 것을 재는 숫자일지 모른다. 한 국가가 무엇을 생산하는가도, 무엇을 제공하는가도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경제가 창조하면서 동시에 인간번영을 재는 숫자를.
하크의 숫자는 장관들을 고개 들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결여된 채 있는 그 숫자는 그들을 멈춰 세우고, 이 성장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묻게 할 것이다.
각주 하나. 1960년 마흐붑 울 하크라는 젊은 파키스탄 경제학자가 박사후 과정으로 하버드에 왔다. 사이먼 쿠즈네츠는 그보다 몇 달 앞서 교수진에 합류해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30년 뒤, 하크는 쿠즈네츠가 완성하지 못하고 탁자 위에 남겨 둔 과제의 절반을 집어들게 된다. 나머지 절반은 아직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아이만 엘 타라비시(Ayman El Tarabishy)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세계중소기업학회(ICSB) 회장 겸 CEO이자 ‘Journal of Small Business Management’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인간중심 기업가정신(Human-Centered Entrepreneurship) 프레임워크의 공동 창시자로, 기업가정신을 비롯해 사회적 혁신, 창의성, 지속가능경영(ESG) 및 공정 성장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이다. 유엔 ‘중소기업의 날’(6월 27일)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정리=김기찬 프레지던트대 국제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