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결핵을 몰아낸 건 경제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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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 땅에서 결핵은 ‘가난의 형벌’이었다. 기침 소리 뒤에 묻어 나오는 핏자국은 절망의 상징이었고, ‘망국병’이라는 수식어는 과장이 아니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의 결핵 유병률은 5%를 상회했다. 그런 결핵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춘 것은 의학의 승리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이 일궈낸 전무후무한 경제 성장의 승리다.

결핵은 본래 숙주의 영양 상태와 주거 환경을 먹고 자라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질병’이다. 보릿고개 시절, 단백질 구경조차 힘들었던 국민들에게 결핵균은 무방비로 열린 문이나 다름없었다. 쌀밥과 고깃국으로 대표되는 영양 상태의 개선은 국민 개개인의 몸속에 그 어떤 항생제보다 강력한 ‘면역의 댐’을 건설했다. 잘 먹고 기운을 차린 국민들에게 더 이상 결핵균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주택 개량과 도시화 역시 결핵 퇴치의 일등 공신이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불결한 판자촌이 사라지고, 환기와 채광이, 매일 샤워가 가능한 현대식 주거 공간이 들어서며 감염의 고리가 끊겼다. 경제 발전으로 얻은 재원은 국가 방역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BCG 접종과 엑스레이 검진 차량의 전국 순회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로였다.

특히 1977년 도입된 의료보험 제도는 결정타였다. 경제 성장의 결실을 온 국민이 나누는 이 획기적인 시스템 덕분에 환자들은 비싼 약값 걱정 없이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다’는 말은 옛말이 됐고, 이는 곧 감염원의 완벽한 차단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속도만큼 결핵 환자 수도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보건 선진국이다. 이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공장의 연기를 마시며 밤낮없이 일했던 산업화 세대의 땀방울이 국민의 폐부(肺腑)를 적시던 결핵균을 씻어낸 것이다. 경제가 무너지면 보건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핵 퇴치의 역사에서 목격했다.

물론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잠복결핵 등 잔존하는 과제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궈낸 경제적 발전이야말로 질병이라는 어둠을 몰아내는 가장 밝은 빛이었음을 부정할 순 없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역사는 곧 ‘국민 건강의 역사’였으며, 번영한 국가야말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박경신 서산 굿모닝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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