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메달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만난 익숙한 상대. 농구 코트에서도, 펜싱 피스트에서도, 야구장과 e스포츠 경기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반환점을 돈 뒤에는 메달 색을 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운명의 경기’가 펼쳐졌죠. 평소보다 훨씬 선명한 승패 앞, ‘한일전’이란 오래된 이름까지 더해졌습니다.
27일까지 열린 정식 결승만 세면 한국과 일본은 아홉 차례 금메달을 놓고 맞붙었죠. 한국의 성적은 6승 3패인데요. 여기에 풀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을 결정한 여자 핸드볼까지 포함하면 금메달의 주인을 가린 한일전은 열 경기, 한국은 7승 3패가 됩니다.
아시안게임의 가장 큰 구도는 여전히 중국·일본·한국의 경쟁인데요. 중국은 1982년 뉴델리 대회부터 한 번도 종합 1위를 놓치지 않았고, 이번 대회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승부처에 유독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는 건 바로 일본이죠.

이번 대회 첫 한일 결승은 남자 농구였는데요. 한국은 20일 열린 결승에서 일본을 67-57로 꺾고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죠. 대회 초반부터 형성된 ‘결승 한일전’의 분위기는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달아올랐습니다.
승부가 한꺼번에 몰린 날은 26일이었는데요. 이날 하루에만 한국과 일본이 다섯 차례 결승에서 만났죠. e스포츠 ‘뿌요뿌요 챔피언스’에서는 강동신이 일본의 11세 구리하라 유키에게 2-10으로 패했는데요. 구리하라는 이 우승으로 역대 아시안게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습니다.
펜싱에서는 한 점이 희비를 갈랐는데요. 여자 플뢰레 단체전은 한국이 28-29로 역전패했지만,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는 일본을 45-44로 꺾었죠. 같은 날 같은 경기장에서 한 점 차 패배의 탄식과 한 점 차 승리의 환호가 교차했습니다. e스포츠 격투게임 단체전에서는 연제길·배재민·이광노가 나선 한국이 일본을 5-2로 제압했죠.
한일 결승은 그날 밤 농구 코트로 이어졌습니다. 여자 농구대표팀은 전반을 42-23으로 마치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경기 종료 15초 전 72-70까지 추격을 허용했죠. 마지막 고비에서 강이슬이 자유투 두 개를 모두 성공했고, 한국은 75-70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는데요. 이해란이 24점, 강이슬이 21점, 이소희가 16점을 올리며 12년 만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다음날인 27일에도 일본과의 금메달 승부가 계속됐는데요. 여자 사브르 대표팀은 결승에서 일본을 45-31로 꺾고 8년 만에 아시안게임 정상에 복귀했고요. 야구대표팀도 결승에서 일본을 3-1로 물리쳤죠. 슈퍼라운드에서 일본에 0-5로 완패했던 한국은 금메달 결정전에서 같은 상대를 다시 만나 설욕하며 대회 5연패를 달성했습니다. 1-1로 맞선 8회 김도영이 결승타를 쳤고 문보경이 추가 적시타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죠.
이날까지 성사된 정식 결승 한일전은 모두 아홉 경기로, 한국이 여섯 번, 일본이 세 번 승리했습니다.

한일전이라는 이름이 특별해서만은 아닌데요. 이번 대회의 한일 결승에는 실제로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기가 많았죠.
26일 여자 플뢰레 단체전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은 마지막 9라운드를 앞두고 27-22로 앞섰다. 다섯 점 차라면 충분히 지킬 수 있어 보였죠. 그러나 일본에 연속 7점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27-29로 뒤집혔는데요. 종료 16초를 남기고 한 점을 만회했지만 거기까지였죠. 다 잡았다고 생각한 금메달은 28-29라는 점수와 함께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나왔는데요. 한국은 마지막 주자 오상욱이 피스트에 올랐을 때 일본에 41-44로 뒤처져 있었죠. 일본에는 한 점, 한국에는 네 점이 필요했습니다. 오상욱은 상대에게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네 차례 연속 득점했는데요. 41-44가 45-44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여자 플뢰레에서 당한 역전패를 남자 사브르가 그대로 되돌려준 셈이었죠.
여자 농구도 편안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19점 차였던 전반의 리드는 경기 종료 직전 두 점 차까지 줄었고요. 야구 역시 7회 일본에 1-1 동점을 허용한 뒤 8회에야 승부를 갈랐습니다.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된 여자 핸드볼 금메달 결정전 경기도 한일전이었는데요.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5전 전승을 거둔 채 27일 마지막 경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기는 팀이 우승하는 사실상의 결승이었죠.
한국은 일본을 27-23으로 꺾고 6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이후 8년 만의 정상 복귀였죠. 2023년 열린 항저우 대회 결승에서 일본에 19-29로 크게 졌던 아픔도 갚았는데요.
전반을 16-12로 앞선 한국은 후반 일본에 24-22까지 추격을 허용했죠. 그러나 골키퍼 박새영이 12개의 세이브로 버텼고, 권한나가 7골, 류은희가 6골을 넣으며 승리를 지켰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종합대회에서 만든 극적인 승부는 그 역사가 깊은데요. 최근 대회만 살펴봐도 결승전 한일 대결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에서는 한국이 10엔드에 동점을 허용한 뒤 연장 11엔드 김은정의 마지막 드로로 일본을 8-7로 꺾었는데요. 같은 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에서는 정규시간을 0-0으로 마친 뒤 연장전에서 이승우와 황희찬이 골을 넣어 2-1로 승리했죠.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는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여자 배구대표팀은 일본전 5세트에서 12-14로 뒤진 채 매치포인트에 몰렸지만 내리 4점을 따내 16-14로 뒤집었죠. 반면 야구대표팀은 준결승 8회말 2사 만루에서 야마다 데쓰토에게 3타점 2루타를 허용해 2-5로 패했고요. 배구는 네 번의 연속 득점으로 8강행을 확정했고, 야구는 한 번의 장타에 결승 진출권을 내줬습니다.
2023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 축구는 결승 시작 2분 만에 내준 선제골을 딛고 2-1로 역전해 대회 3연패를 달성했는데요. 그러나 여자 핸드볼은 결승에서 일본에 19-29로 완패했습니다. 이 패배는 이번 대회에서 일본을 27-23으로 꺾고 금메달을 되찾으면서 설욕의 기억으로 바뀌었죠.
2024년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8강에서는 안세영이 야마구치 아카네에게 첫 게임을 내준 뒤 2-1로 역전했습니다. 안세영은 한국 여자 단식 선수로는 28년 만에 올림픽 4강에 올랐고, 결국 금메달까지 차지했는데요.
평창의 마지막 드로, 도쿄의 12-14, 항저우의 시작 2분 실점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다음 한일전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대회 남자 사브르의 41-44 역전승이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를 떠올리게 하고, 여자 핸드볼의 우승이 항저우 결승의 설욕으로 받아들여진 이유인데요. 새로운 한일전이 열릴 때마다 과거의 환희와 패배도 함께 되살아나고 있죠.

한일전을 향한 관심은 시청률에서도 확인됐는데요.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6일 KBS 1TV가 단독 중계한 여자농구 결승은 전국 평균 10.0%, 순간 최고 19.3%를 기록해 당시까지 이번 대회 최고 시청률에 올랐죠. 20일 남자농구 결승도 지상파 3사 전국 시청률 합계가 14.7%였는데요. 같은 종목의 조별리그 한일전 합계 5.2%보다 세 배 가까이 높았는데요. 25일 야구 슈퍼라운드 한일전 역시 한국이 0-5로 패했음에도 방송 3사 합계 12.6%를 기록했습니다.

한일전은 대회 후반부에도 이어지는데요. 여자 축구대표팀은 29일 준결승에서 일본과 결승 진출을 다툰다. 이 경기에서 지면 금메달 도전도 끝나죠.
남자 축구에서는 결승 한일전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준결승 대진에 올라 있어 두 팀이 나란히 승리하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와 2023년 열린 항저우 대회에 이어 세 대회 연속 결승에서 맞붙죠. 배드민턴과 양궁, 유도, 태권도에서도 남은 대진에 따라 한일전이 추가될 수 있는데요.
추가 한일전이 얼마나 성사될지는 남은 경기 결과에 달렸습니다. 여자 축구는 29일 준결승에서 일본과 만나고, 남자 축구도 양국이 준결승을 통과하면 결승 한일전으로 이어지죠. 대회가 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일본과의 승부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