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은행별 특성에 맞게’라는 대목이다. 은행마다 10년 또는 15년 주기형을 내놓고 상환 방식과 중도상환 조건까지 달리하면 기초자산 현금흐름은 중구난방이 된다. 이런 대출을 한데 묶어 주택저당증권(MBS)으로 유동화하거나 MBS형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을 통해 조달하기 어려워진다. 상품 다양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장기고정금리 시장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30년 고정금리 모기지는 웰스파고나 JP모건, 씨티은행 등이 제각각 설계한 상품이 아니다. 우리나라 보금자리론처럼 장기 원리금 균등상환을 기본으로 구조가 표준화돼 있다. 그래야 조기상환 데이터를 토대로 현금흐름을 예측하고 MBS를 발행할 수 있다.
장기고정금리 모기지는 소비자에게 안정적인 상품이지만 은행에는 결코 안전한 자산이 아니다. 차주에게 중도상환이라는 콜옵션을 내준 ‘음의 볼록성(Negative Convexity)’ 자산이다. 금리가 떨어지면 차주는 더 싼 대출로 갈아탄다. 원금이 예상보다 빨리 돌아오면서 가중평균만기(듀레이션)는 짧아진다. 반대로 금리가 오르면 갈아탈 유인이 사라져 조기상환이 줄고 은행은 낮은 금리에 빌려준 돈을 예상보다 오래 보유해야 한다. 듀레이션이 길어지면서 가격 하락폭도 일반 채권보다 커진다.
위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금리 상승으로 MBS 듀레이션이 늘어나면 투자자는 국채를 매도하거나 금리스와프에서 고정금리를 지급해 늘어난 듀레이션을 줄이려 한다. 이런 헤지 거래가 금리를 더 밀어 올리면 MBS 듀레이션이 다시 길어지고, 추가 헤지가 또 다른 채권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볼록성 사건’이다. 개별 은행 금리위험이 채권시장 전체 변동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장기 고정금리자산의 위험을 보여준 사례가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다.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SVB는 저금리 때 사들인 장기 국채와 MBS에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이 상황에서 예금이 빠져나가고 유동성 압박이 커지자 SVB는 손실을 확정하면서까지 매도가능증권을 팔아 자본확충에 나섰다. 이것이 고객 불안과 뱅크런의 기폭제가 됐다. SVB 사태를 음의 볼록성 하나로 설명할 수 없지만 단기 예금만으로 장기 고정금리 자산을 떠받치는 모델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분명히 보여줬다.
국내 여건도 녹록지 않다. 정기예금 금리가 연 3.5%까지 오르며 저원가성 예금에서 고금리 상품으로 돈이 이동하고 있다. 연준이 현재 4%(상단기준)인 기준금리를 5% 이상으로 인상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유동성 리스크 헤지 장치 없이 장기고정금리대출부터 늘리면 금리 충격 시 은행의 금리위험 지표인 자본의 경제적 가치 변화(델타EVE)가 치솟을 수 있다.
해법은 명확하다. 대출자산을 유동화하기 쉽도록 보금자리론처럼 순수 장기고정·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으로 표준화해야 한다. 유동화수단도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독일식보다 대출기간 중 원리금과 조기상환 현금흐름에 따라 채권이 분할 상환되는 덴마크식, 즉 ‘MBS형 커버드본드’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최근 불거졌던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사태의 본질은 위험 경고를 외면한 채 도입부터 밀어붙인 정책 과정에 있었다. 장기고정금리대출도 인센티브와 출시 실적부터 챙기고 표준화와 위험관리를 뒤로 미룬다면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kimnh21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