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실 안팎으로 순식간에 조급함과 답답함이 밀려들었다. 점심시간을 아껴 서둘러 찾아온 직장인은 연신 손목시계를 노려보며 발을 굴렀고, 수십 년째 오는 노인 환자의 얼굴엔 짙은 답답함이 가득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요?” “늘 먹던 약인데, 그냥 처방해 주면 안 되나?”
날 선 목소리들. 접수도, 과거 기록 조회도, 프린터의 처방전 출력도 멈춰버린 상태에서 당장 내놓을 수 있는 시원한 대안은 없었다.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원내 전산 서버가 멈춰 복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기 시간이 많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안내 음성에 웅성거리던 대기실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기약 없는 기다림보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은 없다. 직원들은 당장 복귀해야 하는 직장인이나 약에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 우선 예약 변경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진료실 안, 모니터 빛이 꺼진 자리, 화면이 보여주던 데이터 대신 환자의 눈을 쳐다보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 불편하신 데가 있나요? 약은 잘 드셨고요?” “에구, 선생님도 답답하시겠네요. 기계도 쉬어야지 별수 있나요. 사실은 요즘 밤에 잠이 좀 안 와서···.”
데이터 상자 뒤에 숨어 있던 환자의 진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니터의 빛이 사라지자, 도리어 환자의 작은 한숨 소리와 손끝의 떨림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삐-” 십 분이 흘렀을까. 모니터에 숫자와 기호가 무심하게 떴다. 진료실 안팎으로 나지막한 안도의 숨이 흘렀다. 시선은 다시 데이터로 모였다. 하지만 화면이 꺼졌던 공백은 숫자와 기호가 채울 수 없는 깊은 잔상을 남겼다. 최첨단 시스템이 멈춰선 순간에도 진료를 이어가게 한 것은, 결국 사람의 목소리와 눈빛이었다는 기억과 함께. 유형준 씨엠병원 내분비내과장/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