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 스피커에게 오늘 날씨를 묻는다. 부모는 챗봇에게 주말 가족 여행 일정을 부탁하기도 하고, 지친 육아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AI는 이제 가족의 일상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의 드루가(Druga) 연구진이 2017년 5~10세 아동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은, 아이들이 음성 비서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격체로 대하며 그 응답을 부모나 교사의 말처럼 신뢰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사람이 미디어를 사회적 존재처럼 대한다는 미디어 방정식(Reeves & Nass, 1996) 경향이, 음성 AI 시대에 들어 더 깊고 미세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단순한 기기 선호가 아니다. 아이들이 안심받고 싶을 때 향하는 자리의 주소가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발달심리학의 가장 견고한 학술 전통 중 하나는 존 볼비(John Bowlby)와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애착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이는 낯선 세상을 탐색하다가도 두렵거나 모르는 것을 마주하면 반드시 안전기지인 애착대상에게 되돌아온다. 그 자리가 안정적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아이는 다시 낯선 곳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오늘날, 그 처음 돌아가는 자리가 부모에서 기계로 이동하는 신호가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발달신경과학자 김필영 교수진이 2025년 5~6세 유아 2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뇌영상 연구는 그 양상을 한 단계 더 들여다보게 한다. 아동이 부모 없이 AI 챗봇과 단독으로 상호작용할 때, 타인의 마음을 해석하는 영역인 우측 내측 전전두엽 피질이 더 강하게 활성화됐다.
특히 AI가 보고 듣는다고 강하게 믿은, 의인화 경향이 높았던 아이들에게서 이러한 활성화가 두드러졌으며 세션 후 무섭거나 두렵다고 느낀 정도도 더 높았다. 부모가 함께 있는 조건에서는 같은 회로의 활성화가 낮아졌다. AI를 사람처럼 해석하려는 의인화가 강할수록 단독 만남이 아동에게 인지·정서적 부담을 더 크게 가했고, 부모의 존재가 그 부담을 해석하고 완충해 주는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이 발견은 양육에 두 갈래의 함의를 던진다. 한편으로 AI는 부모의 수고를 덜고 아이의 호기심에 빠르게 응답하는 보조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양육의 일부 영역을 합리적으로 위탁하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이를 혼자 두고 기계에 시간과 감정을 전부 맡겨버리는 방임적 위탁은 별개의 문제다. 아이의 뇌는 AI를 사람처럼 해석하려 애쓰다 지치지만, 그 곁에 부모가 없으면 그 피로를 회복할 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은 기술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양육자가 함께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AI 시대 양육의 마지노선 하나가 분명해진다. 아이의 정서 조절과 학습 경험만큼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방식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임상심리학에서는 이를 공동 조절이라 부른다. 아이가 AI에게 질문할 때 부모가 옆에서 “그 답이 맞는 것 같아? 엄마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라고 한마디 던지는 공동 사용은, AI를 정답 자판기가 아닌 함께 생각하는 도구로 전환시키는 가장 단순한 개입이다. 한편 부모 자신이 기기에 빠져 아이의 비언어적 신호를 놓치는 테크노퍼런스 즉, 부모의 기술 사용으로 인한 양육 상호작용의 단절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부모의 디지털 의존이 자녀에게 그대로 옮겨지는 세대 간 전이는 국내 연구(안선경 외, 2024)에서도 실증된 바 있다.
AI가 삶의 일부가 된 시대에 AI 사용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기술은 늘 아이의 손 안에 있고, 부모의 감시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부모와 단단히 연결된 아이는 자신의 의존을 스스로 가늠하는 힘을 갖는다. 무엇에 얼마나 기댈지, 언제 멈춰야 할지를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조절력은 결국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본 경험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안전기지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다. 기계와 함께 사는 시대에 양육자가 잃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은, 어쩌면 그 단순한 한 가지, 관계의 온기다.
한유진 | CASA 융합심리연구소 소장 | 한국아동미술치료학회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