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예산 시간표 달라 비효율 발생
꼼꼼한 심의로 전력확보 차질 없길

카톡으로 받은 기프티콘, 언젠가 써야지 하다가 유효기간을 넘긴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못 쓴 것이 아니다. 쓸 때를 놓친 것이다. 국방예산에도 꼭 이런 일이 있다. 한 언론사가 지난 5월 방위사업 통계연보를 분석한 보도를 보면, 무기 사는 데 쓰라고 편성해 놓은 방위력개선비 가운데 2024년에 쓰지 못하고 남긴 돈이 4805억원이다. 최근 6년 중 가장 많았고, 6년 치를 더하면 1조4521억원이다. 물론 이 돈이 어디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해에 안 쓴 돈일 뿐이고, 그중에는 협상을 잘해 아낀 몫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궁금한 것은 액수가 아니다. 아껴서 남긴 것인지, 필요한데도 못 쓴 것인지다.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지난주 나온 내년 예산안 때문이다. 정부가 국회에 낸 2027년 국방예산안은 73조2777억원이다. 집계 방식이 조금 바뀌었지만 예전 기준으로 계산해도 71조8000억 원이니, 창군 이래 처음 70조원을 넘은 것은 맞다. 국방부 설명으로는 증가율 8.2%로 최근 20년 사이 가장 높다. 무기 사는 돈인 방위력개선비만 13.8% 늘어 증액 폭이 2조8000억원, 역대 최대다. KF-21 양산비는 두 배 넘게 늘었고 핵추진잠수함에는 첫 예산이 잡혔다. 이 분야를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솔직히 반갑다. 그런데 반가운 마음 한쪽에 걱정이 슬며시 든다. 지갑은 커졌는데, 쓰는 시간표는 그대로 아닌가.
돈이 남았다고 이유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무기 하나가 필요하다고 정해진 뒤 부대에 배치되기까지 보통 10년 안팎이 걸리는데, 그사이 해외 업체와 협상이 해를 넘기고, 시제품 시험이 미뤄지고, 상대국 승인이 늦어지는 일은 흔하다. 이때 먼저 따질 것은 돈을 실제로 쓸 수 있는 일정에 맞춰 잡았느냐다. 계약 준비는 덜 됐는데 예정된 날짜만 믿고 돈부터 편성했다면 편성부터 고쳐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밀린 것이라면 사업이 끊기지 않게 이어갈 길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명시이월과 계속비처럼 예산을 다음 해로 넘기는 제도가 있지만, 미리 국회 승인을 받거나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춰야 하니 모든 지연을 자동으로 받아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총액만으로는 아낀 돈과 못 쓴 돈이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에 AI와 드론은 기술이 몇 달 단위로 바뀐다. 사업은 10년, 예산은 1년, 기술은 몇 달. 시계가 세 개인데 서로 안 맞으니 돈이 무기가 되는 길목 어딘가에서 자꾸 고인다.
다른 나라라고 지연이 없을 리 없다. 미국도 협상이 늦어지고 시험이 미뤄진다. 다만 예산 성격에 따라 새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기간을 다르게 둔다. 일반적으로 연구개발비는 2년, 무기 구매비는 3년, 해군 함정 건조비는 5년이다. 그 기간 안에서는 협상이 해를 넘겼다고 예산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든다. 안정된 양산 사업에는 여러 해 물량을 묶어 계약하는 다년도 조달도 쓴다. 물론 시간을 준다고 시험이 빨라지지는 않는다. 지연은 지연대로 줄여야 한다. 다만 불가피한 지연이 예산 단절 때문에 더 큰 지연으로 번지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그래서 바라는 것이 있다. 먼저 남은 돈을 줄이라고 다그치기 전에 왜 남았는지부터 나누자. 군사기밀을 뺀 범위에서 계약을 잘해 아낀 돈, 환율 때문에 남은 돈, 사업이 늦어져 못 쓴 돈을 따로 보면 절감 성과와 손볼 곳을 가려 볼 수 있다. 늦어진 사업은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바로잡을지 정하고, 예산을 넘긴 뒤에도 그 조치가 이행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음으로 예산은 낙관도 체념도 아닌 준비 상태를 기준으로 짜자. 협상과 시험이 다 예정대로 끝난다는 가정 대신 계약 준비와 기술 위험을 따져 편성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연말에 가서 허둥대지 말고 예산을 짤 때부터 길을 열어 두자. 그해 안에 지출을 마치기 어려운 경비는 명시이월을, 완성까지 여러 해가 걸리는 사업은 총액과 연차별 금액을 정하는 계속비를 미리 검토하면 된다. 새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있는 제도를 사업 성격에 맞게 쓰는 것이 먼저다.
마지막으로 빠른 기술은 다른 길로 보내자. AI와 드론은 시간을 준다고 풀리지 않는다. 작게 실험하고 현장에서 검증해 바로 들이고, 소프트웨어는 계속 고쳐 쓰는 능력으로 예산을 짜야 한다. 긴 사업에는 돈의 연속성을, 빠른 기술에는 도입의 속도를 주는 것이다.
불용액을 0으로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필요 없는 지출은 멈추는 것이 맞다. 문제는 피할 수 있는 지연이 되풀이되고, 그사이 정작 필요한 전력이 늦어지는 것이다. 예산안은 이제 국회로 갔다. 얼마를 더 얹고 덜어낼지도 봐야겠지만, 일정이 정말 지켜질 수 있는지, 밀리면 어떻게 이어갈지, 도입한 뒤 굴릴 돈까지 챙겼는지를 같이 따지는 심의가 됐으면 한다. 73조원은 국방력이 아니라 국방력을 만들 기회다. 지갑은 커졌다. 이제 지연은 줄이고, 필요한 사업의 돈은 끊기지 않게 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