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사과 재배 적지가 북상하고 남부지역에서는 아열대 작물 재배가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계절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수십 년간 몸으로 익혀온 경험만으로 농사 시기를 판단하기 어려운 날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변화하는 기후 앞에서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정부와 지자체는 스마트팜과 디지털 농업을 미래 농업의 중요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필요한 방향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의 밥상을 지킬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과 배추, 무를 비롯해 상당수 농산물은 여전히 비와 바람, 햇볕을 직접 맞는 노지에서 생산된다. 아무리 첨단 온실이 늘어나더라도 모든 농작물을 시설 안에서 키울 수는 없다. 결국 기후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여전히 ‘흙 위의 농업’이다.
그런데 정작 이곳에 대한 준비는 충분한가. 폭우가 쏟아졌을 때 물을 빼낼 배수시설, 가뭄을 견딜 농업용수 체계, 달라진 기후에서도 살아남을 품종, 반복되는 이상기후에 대응할 재해보장제도는 농민의 생존과 직결된다. 이제 이런 기반을 단순한 농업 지원사업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핵심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
농촌은 이미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데이터를 농업 현장에 적용하자고 하지만 실제 그것을 배우고 실행할 사람이 없다면 기술은 농촌에 뿌리내릴 수 없다. 고령 농민과 여성농업인들은 폭염과 재해가 반복되는 현장에서 농사를 이어가고 있다. 기후위기는 작물에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의 몸과 삶에도 그대로 쌓인다.
그래서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정책은 기술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노지 농업의 기후 회복력을 높이고, 지역별 기후에 맞는 품종을 개발하며, 물과 토양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동시에 농민이 기후재난을 겪고도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소득과 재해 안전망도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오히려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안보 산업에 가깝다. 세계 어디에서든 식량을 값싸게 사올 수 있다는 전제가 흔들리는 순간, 국내 농업 생산기반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반도체와 배터리의 공급망이 흔들리면 국가적 위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쌀과 채소, 과일의 생산기반이 흔들리는 것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농업에 대한 투자를 농민을 돕기 위한 비용으로만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국민의 밥상을 지키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는 사회 전체의 보험이자 국가의 투자다.
기후위기의 마지막 청구서는 결국 우리의 밥상으로 온다. 마트에서 사과 한 알의 가격을 걱정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라면, 이제 우리는 스마트한 농업을 이야기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첨단기술이 바라보는 미래와 함께, 그 기술 아래에 있는 흙과 물, 그리고 그 위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밥상이 무너진 뒤 농업을 다시 세우는 비용은, 지금 흙을 지키는 비용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