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본줄기·곁가지 역사’ 성찰 계기 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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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조선)의 병력 본래 잔약하여 모든 나라 가운데 맨 끝인데다가 태평세월이 200년을 계속해 왔으므로 백성들은 군대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 (귀국의 군대가 쳐들어오면) 온 나라가 놀라고 두려워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배 수십 척에 군인 5000~6000명이라도 (조선을 정벌하는 데에) 족할 것입니다.”

1801년 조선의 한 선비가 외국의 군대가 조선을 정벌해주기를 바라며 쓴 호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극악무도한 친일파가 매국하여 사익을 취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청·러·일 각축한 구한말…‘친일’만 기억

황사영은 16세라는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으며, 정약용하고도 연이 닿아 조카사위가 된 당대 최고의 수재였다. 천주교로 개종한 그는 서양의 학문과 문물을 접하며 낙후된 조선에 대해 한탄하게 된다. 그는 박해를 피하며 은신하다가 베이징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이 같은 백서를 보냈다. 조선은 답이 없으니 프랑스에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정벌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백서는 국경을 넘기 전 발각되고, 그는 능지처참을 당했다.

일본의 손에 넘어가기까지, 조선의 통치권을 외국에 넘기고자 하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조선의 왕정조차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의 지배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청나라, 일본, 러시아를 돌아가며 조선의 여러 이권을 넘겼다. 하지만, 백년이 넘은 지금 그 수많은 이들 중에서 오직 주목받는 건 소위 ‘친일파’들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매국 행위가 성공해서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눈앞에 있는 하나의 물줄기와 같다’라는 말이 있다. 언뜻 보기엔 커다란 하나의 본줄기가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사실상 여러 개의 곁줄기가 합쳐지고 또 갈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장 10년 혹은 20년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도 ‘이럴 줄 몰랐다’며 한탄하곤 한다. 역사를 살아간 인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국주의를 경험해 보지 않은 채, 근대화의 꿈에만 취해 있던 조선 말기 친일파 엘리트들 중, 향후 일본제국이 세계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조선인들을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되었겠는가?

시대 모습 종합해 살피는 안목 키워야

얼마 전, 한 배우가 쟁쟁한 친일파 집안 출신인 게 밝혀지면서 세간이 발칵 뒤집어졌다. 출신 자체보다는 그 배우가 집안의 부를 과시하며 자랑스럽게 여긴 것, 그리고 그의 부친이 남긴 말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우리 편에 서서 고맙게 흘렀다”라는 내막을 알면 섬뜩하기까지 한 내용 말이다. 그런데, 그 배우의 언행과 집안의 친일 행적에만 손가락질하는 대중을 보면서, 세월은 여전히 그들 편에 서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던 조선말과 일제 강점기, 엘리트 집단의 친일 행적은 단순히 개인의 타락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독립 운동가들의 고매한 정신을 기리되, 우리는 그 시대의 모순과 아이러니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냉정한 성찰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야지만 그들의 편에 서서 ‘고맙게 흐른 세월’, 그 자체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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