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대미 투자, 속도보다 실익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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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신속한 실행’ 압박하지만
집행과정 충돌한 일본선례 참고해
한국 산업경쟁력 강화 기회삼아야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경제정책에서 관세는 상대국으로부터 투자와 구매, 공급망 재편을 끌어내는 협상 수단이다. 한국이 미국과 합의한 35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문제는 이제 투자 여부가 아니라 어떤 프로젝트에, 어떤 조건으로, 누가 의사결정을 하고, 투자위험과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다.

한미 간 합의된 대미 투자 틀은 전략산업 분야 2000억달러와 조선 분야 1500억달러로 구성된다. 반도체·에너지·핵심광물·의약품·AI·양자컴퓨팅 등이 주요 대상이다. 한국은 외환시장 충격을 막기 위해 실제 현금투자의 연간 한도를 200억달러로 설정했고, 나머지는 대출·보증 등 다양한 금융수단을 활용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지난 6월 한미전략적투자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이를 관리할 제도적 기반도 갖춰졌다.

그러나 최근 미국 측 분위기는 ‘신속한 실행’에 방점이 찍혀 있다. 미국 정부 내에서는 한국이 투자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에도 한국 국회의 협정 이행이 늦어진다며 관세를 다시 25%로 올릴 수 있다고 압박한 바 있다. 8월 19일 정부가 1호 투자 후보로 에너지 분야를 언급한 것도 이러한 압박 속에서 투자 이행을 가시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한미 양국의 가장 큰 입장 차이는 투자의 통제권과 경제성이다. 미국은 투자 프로젝트가 자국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 에너지·첨단산업 공급망 강화에 기여하기를 원한다. 반면 한국에는 3500억달러가 정치적 ‘선물’이 아니라 국민경제와 외환시장의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상업성, 원리금 회수 가능성, 한국 기업의 참여, 기술·조달 연계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투자 명분을 유지하기 어렵다.

수익배분 역시 민감하다. 전략산업 투자의 경우 원리금을 회수하기 전까지 투자수익을 한미가 50 대 50으로 나누고, 회수 이후에는 미국이 90%, 한국이 10%를 가져가는 구조다. 조선 분야는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의 사업 참여와 수익 귀속을 중시하는 형태다. 결국 한국의 목표는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과 공급망 지배력 확대를 통해 투자비용 이상의 산업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일본의 선례는 중요하다. 일본은 미국과 55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에 합의했다. 미국이 투자대상을 제시하고 대통령이 최종 선정하며, 일본은 원칙적으로 45영업일 이후 자금을 제공하는 구조다. 개별 사업은 미국이 관리하는 특수목적법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미국이 투자 방향을 결정하고 수익의 90%를 확보하는 협상 성과로 홍보했다.

하지만 실제 집행 과정은 훨씬 복잡하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투자대상 선정권, 개발사에 대한 과도한 수수료, 프로젝트 경제성을 둘러싸고 미국 측과 이견을 보였다. 올해 미국 내 발전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불거졌다. 정치적으로 합의된 거액의 투자 약속도 실제 자금 집행 단계에 들어가면 경제성과 위험 배분이라는 현실의 벽을 만난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응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속도보다 프로젝트 품질을 우선시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 일정에 맞춰 부실사업을 선택하면 손실은 수십 년간 남는다. 둘째, 조선·원전·액화천연가스(LNG)·전력망·반도체처럼 한국이 기술과 공급망 우위를 가진 분야를 우선 투자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조선은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하지만 단기간에 자체 역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분야여서 한국의 협상력이 가장 크다.

셋째, 모든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설계·조달·시공(EPC) 및 기자재 공급, 운영 참여와 장기 구매계약을 결합해야 한다. 금융만 제공하는 자금 파트너가 아니라 기술과 생산을 함께 제공하는 산업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넷째, 200억달러의 연간 현금투자 한도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대규모 달러 조달이 원화 가치와 외환보유액에 미칠 충격까지 통상협상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트럼프식 협상의 본질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미국은 관세와 안보, 투자, 에너지 구매를 하나의 패키지로 연결해 협상한다. 한국도 개별 사안을 분리해 방어하기보다 조선·원전·반도체·에너지·방산 등 미국이 필요로 하는 자산을 하나의 협상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야 한다.

3500억달러는 한국 경제에 지나치게 큰 금액이다. 따라서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빨리 투자했는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을 확보했는지, 얼마나 안정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이 얼마나 강화됐는지가 진정한 성적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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