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박덕배의 금융의 창] 엔비디아 성공 신화가 던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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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GPU, AI 만나 핵심산업 일궈
잘하는 분야 강화해 시장조성하고
스타트업 확산하는 생태계 구축을

AI가 세계 산업의 판도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 중심에 엔비디아(NVIDIA)가 있다. 엔비디아는 원래 GPU(Graphics Processing Unit·그래픽처리장치)를 만드는 회사였다. 1993년 젠슨 황 등 세 명이 설립한 엔비디아는 성장하는 PC 게임 시장에 주목해 3차원 그래픽을 빠르게 처리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GPU는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특화된 반도체로, 처음에는 주로 게임 그래픽에 사용됐다.

그런데 GPU의 이러한 특성이 AI 시대를 만나면서 빛을 발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엄청난 양의 계산을 필요로 하는데, GPU의 병렬연산 능력이 여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이제 GPU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고속 네트워크, 서버 시스템까지 공급하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성장했다.

엔비디아의 비약적인 성장을 두고 흔히 AI 붐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한다. 실제로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성장은 엔비디아에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시대의 운도 따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오늘의 엔비디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AI라는 기회가 찾아오기 훨씬 전부터 이를 잡을 기반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AI와 GPU의 결합 가능성이 크게 주목받은 계기는 2012년이었다. 이미지 인식 AI인 알렉스넷(AlexNet)이 엔비디아 GPU를 활용해 뛰어난 성능을 보이면서 GPU가 AI 연산에 적합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딥러닝과 생성형 AI가 급성장하면서 GPU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AI의 부상은 외부에서 찾아온 기회였지만 엔비디아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그 준비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였다. 엔비디아는 AI 붐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2006년 CUDA를 내놓았다. 개발자들이 GPU를 그래픽뿐 아니라 과학계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이다. 외부 개발자들이 GPU의 능력을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연 것이다. 개발자와 관련 프로그램이 늘면서 경쟁력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생태계로 확장됐다. 행운은 나중에 찾아왔지만 그것을 성과로 바꿀 준비는 오래전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엔비디아는 AI 시대가 열린 뒤에도 칩 판매에 머물지 않았다. GPU에 소프트웨어와 고속 네트워크, 서버 시스템을 결합해 데이터센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AI 컴퓨터처럼 작동하도록 사업을 확장했다. 경쟁의 단위를 ‘칩’에서 ‘시스템’으로 넓힌 것이다. 결국 엔비디아의 성공은 핵심 기술의 축적과 새로운 용도의 개척, 개발자 생태계 구축, 시스템과 플랫폼으로의 확장이 AI라는 시대적 기회와 만난 결과다.

이러한 경험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고민하는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래 유망 산업을 발굴하고 선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10년, 20년 뒤 어떤 기술과 산업이 세계를 지배할지 정확히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성장전략이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기계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과 제조역량을 축적했다. 그러나 우수한 기술을 제품으로 만들고 대량생산하는 능력에 비해, 축적된 기술을 다양한 주체가 활용해 새로운 용도와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동안 기술개발이 대기업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기술이 기업의 경계를 넘어 개발자와 스타트업 등으로 확산되고, 새로운 사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기술을 잘 만드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주체가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부의 역할도 미래 유망 산업을 선정해 지원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업과 연구자, 개발자와 스타트업이 기존 기술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하고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기술이 예상하지 못했던 시장과 만날지는 미리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성공 신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는 여기에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먼 곳에서만 찾기보다 우리가 잘하는 기술의 새로운 쓰임을 찾아내고, 그 위에서 새로운 기업과 시장이 자라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기술 강국 한국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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