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누더기 세제가 키운 ‘똘똘한 한 채’와 ‘서학개미’

기사 듣기
00:00 / 00:00

▲마켓인사이트 부장
정부가 세제 개편안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냉담하다.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고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할 정책이 핵심적인 구멍은 그대로 둔 채 미봉책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금융투자 시장을 동시에 왜곡하는 결정적인 두 축을 꼽으라면 단연 ‘1주택 비거주 전세에 대한 임대소득세 방치’와 ‘해외 직구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에 주어지는 과도한 세제 혜택’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똘똘한 한 채’를 향한 맹목적 쏠림으로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중과가 이어지면서 모든 자본이 강남 등 핵심지의 초고가 1주택으로 집결한 탓이다. ‘한국의 1주택 세제 혜택은 지구 최강’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1주택 비거주자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논의가 나올 때마다 “선진국 어디에 1주택 비거주를 중과하느냐”는 반발이 터져 나오지만, 이는 명백한 왜곡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실거주하지 않는 주택에 대해 비과세나 공제 혜택을 원천 배제하거나 중과한다. 집을 비워두지 않고 전월세를 놓을 경우 실거주 요건을 면제해 주기도 하지만, 그 대신 임대소득에 대해 빈틈없는 세금을 부과한다. 반면 우리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1주택자의 전세 보증금에 대해 여전히 과세의 성역을 유지하고 있다. 다주택을 처분하고 강남의 초고가 아파트 한 채로 갈아타는 것이 가장 안전한 절세 전략이라는 신호를 국가가 세법으로 공인해 준 꼴이다.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모순은 더욱 기괴해진다. 정부는 걸핏하면 국내 증시 부양과 자본시장 밸류업을 외치지만, 정작 세제는 국내 상장 자산에 족쇄를 채우고 미국 증시 직구를 노골적으로 우대한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미국 지수 ETF에 투자해 수익을 내면 배당소득으로 분류돼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된다. 다른 소득이 많은 투자자라면 최고 49.5%의 세금 폭탄을 맞는다. 반면 미국 시장에서 직접 주식이나 ETF를 매수하면 아무리 수십억원을 벌어도 22% 양도소득세 분리과세로 깔끔하게 종결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차이는 극명하다. 1억원을 투자해 6억원의 차익을 거뒀을 때, 국내 상장 해외 ETF는 종합소득세 최고세율 적용 시 2억4000만 원 가까운 세금을 토해내야 한다. 반면 해외 직구는 1억945만 원이면 끝난다.

이마저도 배우자 증여라는 거대한 우회로가 열려 있다. 10년간 6억원까지 주어지는 배우자 증여공제를 활용해 양도차익을 없앤 뒤 1년 후 매도하면 단 1원의 양도세도 내지 않는다. 국내 상장 상품에는 꿈도 꿀 수 없는 특혜다. 고액 자산가들이 원화를 달러로 바꿔 미국 증시로 떠나는 ‘서학개미’ 행렬에 오르는 것은 그들의 변심이 아니라 국가 세법의 유인 때문이다.

“살다 보니 집값이 올랐을 뿐인데 약탈적인 세금을 걷어간다”는 하소연이 있다. 그렇다면 청춘을 바쳐 성실히 출퇴근한 대가로 연봉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49.5%의 최고 소득세율을 꼬박꼬박 원천징수당하는 평범한 월급쟁이는 과연 무엇인가.

선진국 수준으로 실거주 여부를 가려 임대소득을 철저히 과세해야 ‘똘똘한 한 채’ 신화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아울러 해외 직구와 국내 상장 자산 간의 과세 형평을 맞춰야만 빠져나가는 자본을 국내로 되돌릴 수 있다. 조세 정의를 실현하고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을 지키기 위한 세제의 원칙 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