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홍준형 칼럼] 연임 개헌 논란에 비친 ‘법도구주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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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 차원 빙자한 반복적 운 띄우기
정의 표방한 정권 민낯에 국민 실망
법치주의 거스르면 제 발등 찍게 돼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개헌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국회 권한이 강화된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위해 필요하다면 임기 단축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임 개헌을 둘러싼 의혹의 눈초리도 여전하다. 여론은 선뜻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연임 안 한다’는 의사를 확약하라고 을러대는 건 비단 독 오른 야당만이 아니다. 연임 포기 약속을 큰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재명 정부 들어 권력구조 개헌에 관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대통령, 국회의장 또는 청와대 등 여러 입을 빌려 운을 띄웠다. 논란이 일고 파문이 커질 조짐을 보이면 청와대가 나서 원론적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꼬리 자르듯 얼버무리곤 했다. 하지만 커진 의혹의 마무리는 늘 불편한 뒷맛을 남겼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한 헌법 제128조 제2항을 들먹이는 걸로 봐서는 그런 의도가 없거나 무리수를 둘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들은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권력자의 법의식 때문이다. 법도구주의,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한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의 궤변을 방불케 하는 극한도구주의의 망령이 여의도 의사당을 휩쓸고 있다. 오늘의 한국,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정의관, 유력한 당대표 후보까지 앞장서서 정의는 나의 벗이라는 듯 심판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혹 솔직하다는 평을 받을지 몰라도 신뢰를 만들지는 못한다. 반독재민주화투쟁 시절 하도 당했기에 정권 잡고 법을 장악하는 게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음일까, 정의를 위해 부당한 법은 어길 수 있고 언제라도 뜯어고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군사정권이나 박근혜-윤석렬 정권 시절과는 맥락과 뉘앙스를 달리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었다. 시계바늘이 군사정권 시절과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그만큼 법치주의는 침식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법도구화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법도구주의의 과잉 억제에 중추적 역할을 할 사법부 구성을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대법관 증원책략’(court-packing)을 추진하고 입법권 남용을 억제할 최후의 보루인 헌법재판소 구성을 유리하게 바꾸려 시도한 일, 사법개혁의 이름으로 공소취소, 정확히는 특검에 의한 공소취소를 밀어붙인 일, ‘노란봉투법’상 쟁의사유에서 법률의 위임조항이 없다는 주무부처 장관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에 경영상 투자결정을 예외로 명시하라는 지시를 내린 일 등, 일일이 매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에 비하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쳤는데도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박탈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말은 허무개그 수준이다. 논란이 일자 참모들로부터 법개정 취지는 숙지하고 있었다는 변명이 나왔지만 수사적 표현이든 서투른 겸허함에 따른 말실수든 잘 소화가 되지 않는다.

검경합수부 수사의 법적 근거 문제와 관련하여 검사 수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의문을 표한 것도 그에 못지않은 사례이다. ‘사이다’ 대통령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사람들은 더 이상 갈증을 풀었다고 반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바라는 건 언제 어떤 이유를 들어 말을 바꿀지 모른다는 불안을 씻어줄 신중하고 일관된 대통령의 언동이고 그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한 헌법과 법률에 대한 헌신과 존중이다.

집권여당은 어떤가. 입법만능의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며 스스로 입법권의 존엄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때론 빛의 속도로 때론 전격전으로 서슴없이 거침없이 밀어붙이지만 일단 내지르고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경솔한 입법전략은 역사의 심판을 예약한다. 입법자는 자신이 위임받은 입법권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유권자로부터 절대다수 신임을 받았으니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인가? 국회를 장악한 집권여당은 자신들이 떡 주무르듯 해온 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아야 한다.

집권 1년을 막 넘긴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누구보다 기대했던 2030세대로부터 퇴짜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부동산 정책에서 보았듯이 공정과 유능 모두 기대에 미달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정의·공정을 표방했던 정권의 민낯 실제 행태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특검에 의한 공소취소는 아무리 겉 포장을 잘해도 법의 지배, 적어도 정정당당한 정부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법을 마구잡이로 주무르다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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