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들은 복장과 행색에 관해 매우 까다롭고, 민감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지 않으면 엔지니어 축에도 끼지 못했고, 파타고니아 브랜드가 아닌 패딩을 입으면‘진성’ 엔지니어로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후드 티셔츠 하나 걸치고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니는 것 같지만 그들 세계에선 패션 스타일과 브랜드, 신발 가지고도 가리고 따졌다. 기술혁신과 함께 IT공룡들이 경제를 지배하던 시대, 엔지니어들은 예민하게 일반 직장인들과 차별화했다.
사무실 근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정장을 스포츠 정장으로 대체하되 구두 대신 고급 스니커즈를 신었다. 유행에 뒤지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구세대로 간주되고, 부지불식간에 꼰대 취급을 당했다.
그들 패션이 확 달라졌다. 남성 직장인들이 스니커를 벗어 던지고, 윤기나는 정장 구두나 반짝이는 로퍼를 신고 다닌다. 어느새 사무실서 스니커를 신은 직장인은 보기 어려워졌다. 있다면 그는 아마 ‘아저씨’ 취급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로퍼나 더비, 옥스퍼드 같은 고급 정장 구두를 주로 신는다. 오죽하면 연초 영국 타임스가 올해를 ‘로퍼의 해’로 정했을까.
직장인들의 패션이 은근슬쩍 바뀐 건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복장 규정이 흐트러졌을 것 같지만 오히려 ‘출근 복장은 좀 갖춰 입어야지’ 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보다 실질적인 계기는 AI의 등장과 산업구조 재편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인공지능 혁신으로 아마존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술 공룡 기업들이 대규모 감원을 하게 되면서 콧대 높았던 엔지니어들의 몸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졸업 후 취직만 하면 수십만 달러를 벌어들이던 엔지니어들이 불과 수년 만에 한 해 수만 명씩 떨려 나가는 상황으로 급반전된 게 문제였다. 금값이던 엔지니어들의 상당수가 몇 년 만에 대체가능 직종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제 운동화나 슬리퍼를 질질 끌며 사무실을 거닐 수 없게 됐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신화의 쇠퇴와 동시에 첨단기술을 집약하고 통합,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연구소에 갇혀 있기보다는 투자자도 만나야 하고, 많은 사람도 접촉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좀 더 세련되고 차려 입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대 간 발상의 차이, 반발심도 작용했을 법하다. 상사가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면 뭔가 다른 패션을 찾게 된다는 게 젊은 직장인들의 얘기다. 청바지가 유행하던 시대처럼 세대 차이가 불러 일으킨 패션의 변화라고 보는 것이다.
요컨대, 중년의 직장인들이 짙은색 정장과 넥타이, 구두 패션에 갇혀 있던 과거 직장인들의 엄격한 복장에서 벗어나 스포츠 정장에 스니커즈를 신는 게 그들에겐 일종의 새로운 패션이자 자유를 구가하는 징표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졸지에 그것도 인공지능 세대에겐 올드 패션, 이른바 ‘아저씨 패션’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장, 구두 패션은 또 얼마나 갈까. 푸마, 아디다스 등 고급 스니커즈 메이커들은 조만간 다시 편리함을 추구하는 패션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 젊은이들이 자유와 창의성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스니커 패션이 생각보다 일찍 되돌아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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