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네안데르탈인이 고마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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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지만 실제 야생에서 죽은 호랑이의 가죽은 대부분 수개월 길어야 수년 내에 미생물에 분해돼 사라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뼈나 이빨이 훨씬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이는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여서 화석화된 상태로는 수억 년 동안 보존되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 수만 년 전, 심지어 수십만 년 전 뼈나 이빨 시료에서 DNA를 추출해 염기서열을 해독할 수 있는 고(古)게놈 분석기술이 개발되면서 이전에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오는 상황이 현실이 됐다. 이미 멸종한 동물의 게놈을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고인류도 포함돼 있어 약 50만 년 전 현생인류 계열과 갈라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게놈이 해독됐다. 참고로 둘은 약 30만 년 전 갈라졌다.이들의 게놈을 현생인류, 즉 우리의 게놈과 비교하자 피가 섞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즉 네안데르탈인 게놈이 토착 아시아인과 유럽인 게놈의 1~2%를 차지하고 데니소바인 게놈은 아시아인에 0.1% 흔적을 남겼는데 특이하게도 오세아니아인에서는 최대 5%나 됐다. 발굴지 분포를 보면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서아시아에, 데니소바인은 아시아에 살았으므로 말이 되는 결과다.

게놈 정보로 존재가 드러났지만 데니소바인의 유골은 손가락과 이빨, 아래턱뼈 등 신체 일부뿐이라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었는지 모른 채 추정만 할 뿐이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온전한 유골이 많이 남아있어 살과 피부를 붙인 그럴듯한 모형이 벌써 만들어졌다. 이에 따르면 이들은 체격이 건장하고 머리(뇌)가 큰 데다 이마가 낮고 눈 위 뼈가 툭 튀어나와 있어 원시적인 인상을 준다. 이를 바탕으로 네안데르탈인은 힘은 셌지만 미련해 현생인류에게 밀려나 멸종한(또는 흡수된) 것으로 묘사됐다.

최근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한국인 100명에 30명은 네안데르탈인 덕분에 건장한 체격을 타고났고 이 가운데 두세 명은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근력운동을 별로 하지도 않는데 근육질이라면 4만여 년 전 멸종한 이들의 유산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주축인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과거 네안데르탈인 계열에서 일어난 성장호르몬수용체(GHR)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주목했다. 그 결과 산물인 수용체 단백질의 아미노산이 바뀌며 호르몬 신호가 강해진 결과 이들이 건장한 체격을 갖는 데 기여한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자들은 세계 각지의 바이오뱅크에 저장된 현대인의 게놈을 분석해봤는데, 아시아인에서 네안데르탈인 GHR 유전형의 비율이 높았다. 즉 유럽인은 0.5%에 불과하지만 남아시아인은 20%나 되고(파키스탄인이 24%로 최고) 동아시아인도 15%를 차지했다. 유전자는 부모에게서 한 쌍을 받으므로, 동아시아인(한국인)의 26%는 네안데르탈형을 하나 지니고 있고 2%는 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고인류의 게놈은 현대인의 게놈에 모자이크 조각처럼 남아있어 전체 양은 비슷해도 유전자 구성은 제각각이다.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신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유전자 한 쌍 모두 현생인류형인 사람에 비해 네안데르탈형을 하나 지닌 사람은 키가 평균 0.3㎝ 더 크고 몸무게도 0.3㎏ 가까이 더 무거웠다. 그런데 늘어난 몸무게는 대부분 근육이었다. 체지방률은 오히려 준 셈이다. 엉덩이둘레도 0.3㎝ 더 길었다. 보통은 체지방률과 비례하는데 이 경우는 근골격계가 커진 결과다. 즉 네안데르탈형을 지닌 사람은 꿀벅지라는 말이다. 반면 아래턱의 높이는 3.6㎜ 짧았고 치근(이의 뿌리)도 약간 짧았다. 요즘처럼 작은 얼굴을 선호하는 문화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인 셈이다.

적어도 GHR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인형을 지닌 사람이 복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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