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여름이 즐겁다고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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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경남 내륙 양산의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겼다고 한다. 끔찍한 열기가 한반도를 덮친 뒤 온열병 환자가 속출하는데, 강은 녹조가 짙어 독극물 풀은 듯 험하고, 땡볕 아래 밭작물들은 타들어간다. 돌아보면 작년 이맘때 더위도 대단했다. 어는 도시에선가 새들이 날다가 기절해서 추락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땡볕 아래에서 몸을 쓰는 소방대원, 우체부, 택배기사, 농촌의 이주노동자들의 안위가 걱정이다.

 지금은 여름 한가운데다. 가늘게 뜬 눈에 뛰어드는 여름 풍경은 잘못 인화된 사진인 듯 뿌옇다. 해는 공중에서 지글지글 끓고, 버찌 나무 잎들 사이에서는 숨은 버찌들이 까맣게 익는다. 텃밭의 토마토 줄기에 달린 토마토들이 둥글게 여물고, 옥수수의 키가 어른만큼 높이 자랐다. 동네 아래 산채비빔밥집 주차장 나무 그늘 아래에는 어른들 서넛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매미가 울어대는 등산로 초입, 산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여름의 빛도, 그늘도, 매미도 많은데, 내가 모르는 건 더 많다.

 어려서부터 여름을 좋아했다. 젊어서도 여름을 좋아했다. 여름 과일을 좋아하고, 물가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갈참나무 진액을 빠는 풍뎅이를 잡으러 갔다가 더위 먹은 뱀이 나뭇가지에 긴 몸을 늘어뜨린 걸 보고 놀랐다. 저녁엔 모깃불을 피운 마당 평상에서 애호박 넣고 끓인 수제비를 먹고, 찬 우물에 담갔던 샛노란 참외나 찐 옥수수를 먹다가 외할머니 무릎에서 까무룩이 잠이 들었다. 지금은 다들 바쁜 탓에 여름 정취를 누리는 일은 난망해졌다.

 열대야로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인다. 낮엔 졸음을 쫓으며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며 소일한다. 어쩌다가 시 한 편을 읽기도 한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이성복, 「그, 여름의 끝」)

 마침 오늘은 입추다. 하지만 여름은 안 끝났다. 말복 고비를 넘기고 칠월칠석 즈음 비로소 더위가 꺾일 테다. 어쨌든 입추에서 입동까지는 엄연한 가을이다. 달도 차면 기울고, 더운 계절이 가면 찬 계절이 온다. 자연에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이치가 삼엄하다. 세상에 먼저 왔던 외할머니며 외삼촌들은 돌아가셨다. 일찍 온 이들이 떠나고 늦게 온 미천한 것들이 남아서 세상을 꾸린다.

 시인이 노래한 목백일홍 억센 꽃들은 붉다. 붉어서 맵고 화사한 이 여름꽃은 백일을 견딘다고, 목백일홍이란 이름을 얻었다. 목백일홍 꽃 만발했는데, 매미들은 어쩌자고 저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는가! 여름은 무릇 생명들의 소란과 번거로움 속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계절이구나, 하고 감탄한다. 반바지를 입은 소년들이 우루루 몰려가는데,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그렇건만 영원의 한 찰나에 여름은 여름의 일들로 바쁘다. 소년들아, 한 번 왔다가 가는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다. 그러니 여름의 환희를 만끽하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여름이 즐겁다고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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