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진료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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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교과서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약 처방을 할 수 있다.” “이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똑 부러지게 “약 처방을 한다”, “도움이 된다”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우유부단해 보이는 문장들이다. ‘약 처방을 한다’가 진술에 가깝다면, ‘약 처방을 할 수 있다’는 권고이자 선택 가능성을 담은 표현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 교과서라면 ‘해야 한다’라는 의무와 강요의 진리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초년 의학도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생명의 복잡성과 가변성을 마주하면서, 불확실한 현재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감당해 내는 의사의 임상적 재량이 왜 가치 있는지를 곧 깨닫게 되었다.

며칠 전, 팔순의 당뇨병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섰다. 검사 수치는 당화혈색소를 더 낮추기 위해 약제를 추가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홀로 살며 끼니가 일정치 않은 환자의 일상을 생각하면, 저혈당의 위험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숫자는 약을 늘리라고 했지만, 삶은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고심 끝에 약을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

최첨단 컴퓨터와 인터넷 네트워크, 그리고 AI가 분석하고 생성하는 방대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도 인간의 창의성이 빚어낸 예술이 깊은 울림을 주듯, 진료 역시 단순한 계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데이터 속에는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삶의 사정과 세월의 곡절이 숨어 있다. 교과서가 “처방한다”가 아니라 “처방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가능성을 열어둔 그 여백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살필 수 있도록 남겨 둔 의학의 신중함이다. 질병만 겨냥하는 기술을 넘어, 환자의 삶까지 보듬는 치유가 가능하도록 의사의 임상적 자기결정이 충분히 작동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의학 교과서의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은 불확신의 망설임이 아니다. 정답 하나를 고집하지 않고, 환자의 삶과 의사의 고심이 함께 들어설 수 있도록 남겨 둔 진료의 여백이다. 유형준 씨엠병원 내분비내과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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