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술을 도입할 때 장애 당사자의 요구는 맨 뒤로 밀린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 놓고 개조(retrofit)하려면 비용이 더 든다. 처음 지을 때부터 경사로를 의무화했다면 들지 않았을 돈이다. 서울지하철은 1974년 개통 후 20년 동안 엘리베이터가 단 한 대도 없었다. 건장하게 걸어다니는 사람을 기준으로 만든 곳에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새로 놓으려니 돈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건 너무 명백해졌다.
AI는 그 잠재력만큼 소수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애초에 축적된 데이터가 적으면 처음부터 존재 자체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대 음성접근성프로젝트(SAP) 연구진에 따르면, 단어오류율 3.4%로 비장애인의 음성을 알아듣는 음성인식 모델이 파킨슨병으로 조음장애가 생긴 사람의 말은 36.3%나 틀리게 받아썼다. 열 마디 중 서너 마디를 못 알아들은 셈이다. 음성으로 가전과 자동차를 조작하는 시대에 이건 배제다. 장애인 211명의 음성을 모아 다시 학습시키자 오류율은 23.7%로 떨어졌다. 데이터를 ‘일부러’ 쌓으면 편향이 줄어든다는 증거다. AI시대에 장애 관련 데이터는 더 잘 쌓아야 하고, 장애 관련 기술 개발은 ‘특별한’ 기능이 아닌 기본 기능이 되어야 한다.
국가AI위원회 사회분과에서 지난 1년 동안 많은 정부부처를 만나며 앵무새처럼 ‘접근성’을 외쳤다. AI 교육을 한다고 하면 교육장의 물리적 접근성과 교육 자료의 정보접근성을 꼭 챙겨달라고 했다. 무엇보다 당사자를 ‘도입 초기부터 불러서’ 직접 디자인에 참여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남영 씨는 이렇게 덧붙인 적이 있다. “제 일상은 전쟁이에요. 매일 건물의 턱과 전쟁하고 키오스크의 높은 버튼과 전쟁하죠.” 일상과 싸우고 싶은 사람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 장애인이 전쟁 대신 평안한 일상을 누리려면 무엇이든 처음 만들 때부터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
다시 LG전자 행사장. ‘볼드무브’라는 이 커뮤니티 행사에는 장애·시니어 고객과 LG전자 직원, 디자이너, 브랜드 마케터 등 40여 명이 모여 모두가 함께 쓰는 가전 기능을 고민했다. 휠체어를 이용해도, 시각장애가 있어도 쉽게 쓸 수 있는 세탁기 아이디어를 발표한 김남영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일상이 전쟁인 제게 이 커뮤니티 활동은 여행 같았어요. 앞으로 전자제품을 쓰는 게 전쟁이 아닌 다른 비장애인들처럼 설레는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