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을 만들고, 기업은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을 예측한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 농촌에는 아직도 데이터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농촌 여성이다.
농촌 여성은 새벽부터 밭으로 나간다. 농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식사를 준비하고, 부모를 돌보고, 아이를 키우며, 마을 공동체의 크고 작은 일을 맡는다. 생산자이자 돌봄 노동자이며 지역사회의 연결자다. 그러나 국가 통계 속에서 그는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농가 구성원’이라는 단어로 묶여 버린다.
정부는 통계를 바탕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정책을 설계한다. 결국 데이터가 있는 사람에게는 정책이 생기고, 데이터가 없는 사람에게는 정책도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나라 농촌 정책의 기본 단위가 여전히 가구, 농가, 농업인이라는 데 있다.
농가 소득은 조사하지만 여성 개인의 소득은 보이지 않는다. 농업 생산량은 집계하지만 여성이 하루에 몇 시간을 무급 돌봄에 쓰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농기계 사고는 통계가 되지만 반복적인 농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정신건강 문제, 갱년기 건강, 돌봄으로 인한 만성 피로는 정책의 중심 지표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여성이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 알고 있을까. 농번기 하루 노동시간은 얼마인지, 농사와 가사를 합치면 하루 몇 시간을 일하는지, 부모와 손주를 돌보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마을 행사와 공동체 유지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는지 묻는 국가는 많지 않다.
측정하지 않으니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니 예산도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농촌 여성 데이터의 공백이다. 숫자로 존재하는 사람은 정책의 대상이 되지만, 숫자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정책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농촌 여성은 지금도 농업과 돌봄이라는 두 개의 경제를 동시에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통계는 여성의 노동을 가족의 노동으로 흡수하고, 개인의 삶을 가구의 평균 속에 숨긴다. 결국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이 가장 적게 기록되는 역설이 반복된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농촌 여성의 디지털 활용 수준은 어떠한가. 농촌 여성의 자산 형성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기후위기 속에서 여성 농업인의 노동은 얼마나 증가했는가. 여성 농업인의 정신건강은 어떤 상태이며, 돌봄 부담은 삶의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질문들에 국가가 즉시 답할 수 있는 데이터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통계가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제를 발견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이제는 농촌 정책의 출발점을 바꿔야 한다. 농가 중심 통계에서 사람 중심 통계로, 평균 중심 통계에서 성별과 생애주기를 반영한 통계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촌 여성 데이터 혁신’을 새로운 국가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여성 개인을 기준으로 △소득 △농업노동 △무급 돌봄노동 △건강 △정신건강 △디지털 역량 △자산 △교육 △정책 참여 △지역사회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조사하는 ‘농촌 여성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더 나아가 ‘농촌 여성 삶의 질 지수’, ‘농촌 돌봄 부담 지수’, ‘농촌 여성 노동시간 지수’, ‘농촌 여성 정책참여 지수’와 같은 새로운 국가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돌봄 정책을 만들고, 건강 예산을 배분하며, 여성농업인 지원사업의 효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결국 데이터는 정책을 움직이는 언어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국가를 자부한다. 그러나 농촌 여성을 여전히 ‘가구’라는 하나의 숫자로만 기록한다면, 그것은 디지털 강국이 아니라 데이터의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국가일 뿐이다.
우리는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 그러나 더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국가는 지금 누구를 보고 있는가. 데이터에서 사라진 여성은 결국 국가의 미래에서도 사라진다. 농촌 여성을 정책의 중심에 세우는 첫걸음은 거창한 사업이 아니다. 먼저 농촌 여성을 한 사람의 삶으로 기록하는 것. 대한민국 농촌정책의 혁신은 바로 그 한 줄의 데이터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