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밴드티를 제외하고서는 여름옷을 산 적이 없다. 내한 공연이나 페스티벌에서 파는 투어 한정 머천다이즈를 음반처럼 사모았던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여름의 유니폼이 됐다. 사진을 찍히거나 공식적인 자리에 가면 어떤 밴드티를 입을지 고민하는 게 일이다.
음반 산업이 쇠퇴하고, 음원 산업의 규모가 음반의 그것을 온전히 보존하지 않는 이 시대에 공연은 음악 산업의 헤게모니를 차지한다. 그에 따른 부가가치, 즉 티셔츠를 비롯한 머천다이즈의 중요성도 커졌다. 따라서 최근 몇 년 사이 밴드티의 컬러는 놀랍도록 다양해졌고 나의 행어는 마치 드림 콘서트의 아이돌 팬클럽 풍선색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의 티셔츠가 걸려 있게 되었다.
거리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듯, 밴드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아시스, 메탈리카처럼 흔한 티는 사지 않는다. 오아시스와 메탈리카를 너무나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대신 2000석 정도 규모의 공연장에 내한했던 밴드의 티를 입고 다니면 사실상 평생 그 티를 입은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다 해도 좋다. 글래스톤베리, 코첼라, 서머소닉 같은 해외 페스티벌 티는 ‘록부심’을 한 껏 부릴 수 있는 아이템이다. 물론 거리의 사람들은 한낱 보세티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페스티벌처럼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선 빛을 발한다. 따라서, 밴드티는 휴가철의 군복과 같은 존재다. 아무리 밤새 전투화에 물광을 내고, 전투복에 빳빳이 줄을 세워도 서울역에서 마주치는 다른 부대 군인들이나 관심을 보일 뿐 민간인이 보기엔 다 똑같은 ‘군바리’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본 적 없는 밴드티를 보면 부러움과 더불어 강력한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괜히 가서 말이라도 걸고 싶어진다. 산책하다 만나는 애견인의 대화처럼 가볍지만 반가운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취향의 연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티셔츠는 가장 개인적인 정치적 선언이라고 누가 그랬다.
콘텐츠의 시대에서 브랜드의 시대로 진화했다. 단순히 패션 브랜드 뿐만 아니라 명 밴드들의 로고도 브랜드로 소비된다. 트렌드에 둔감한 나는, 지금 성수동에 넘쳐나는 밴드티를 보며 조금은 기쁘다. 마침, 페스티벌의 계절이 시작됐다. 당장 이달 31일부터 인천 펜타포트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땐 또 어떤 티셔츠를 살까. 헤드라이너인 매시브 어택은 너무 올드하고, 크루앙빈은 조금 힙하려나. 벌써 머리가 아프다. 통장 잔액도 걱정된다.
그 티셔츠를 입고 홍대앞이나 성수동을 누빈다면 패션템으로 밴드티를 입은 젊은이들과 교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정도의 메타인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음악 좋아하는 또래 친구들을 만날 때나 입고가서 자랑하겠지. 혹여 같은 페스티벌에서 같은 티셔츠를 사서 입은 젊은이를 다른 곳에서 마주친다면 오히려 내가 미안해할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에겐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닐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