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들의 피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단연 ‘탁족(濯足)’이다. 몸 전체를 물에 훌훌 던져 넣는 것을 무례이자 격조 없는 행동으로 여겼던 선비들은, 도포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고 맑은 계곡물에 가만히 발을 담갔다. 발바닥의 혈자리를 통해 차오르는 서늘한 기운으로 온몸의 화기를 다스리던 그들의 모습에는 절제된 기품이 묻어났다. 여기에 뜨거운 삼계탕이나 육개장을 먹으며 땀을 흘리는 이열치열을 더해, 몸 안팎의 기운을 조화롭게 맞추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의 고단함과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운치를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그가 남긴 ‘소서팔사(消暑八事)’는 한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즐거움을 노래한다. 소나무 숲에서 활을 쏘고, 대자리 위에서 바둑을 두며,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를 듣고, 연못의 연꽃을 감상하며, 비 오는 날 시를 짓는 일 등이다. 그들에게 여름은 피해야 할 시련이 아니라, 계절이 선물하는 고유의 정취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즐기는 기회였다.

올여름에는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들고 근처 나무 그늘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듯 마음에 조용한 쉼표 하나를 찍고, 선비들처럼 마음속에 서늘한 바람 한 줄기를 스스로 일으켜 세워보자. 무성한 댓잎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누워 잠시 푸르른 하늘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여유를 꿈꾸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