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헨리 여권지수, 세계 여권 순위 발표

한국 세계 2위.
듣기만 해도 어깨가 딱 펴지는 순위. 비록 1위는 아니지만 2위의 ‘파워’라는 건 으쓱할 만하기에 충분한데요. 더군다나 이 순위가 ‘여권’이라니 전 세계의 남다른 시선을 느끼는 듯한 기분이죠.
20년 전만 해도 10위권 밖이었지만 이제 일본과 동 순위, 한때 세계 최강이었던 미국보다도 앞서 있는데요. 어떻게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요?

영국 국제교류·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가 21일(현지시간) 발표한 ‘2026년 7월 헨리 여권지수’에서 한국은 일본·아랍에미리트(UAE)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습니다.
한국 여권으로 사전에 비자를 받지 않고 방문할 수 있는 국가·지역은 188곳인데요.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곳뿐 아니라 도착비자나 전자여행허가만 필요한 목적지도 포함되죠.
1위는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 여권으로 갈 수 있는 목적지는 192곳으로 한국보다 4곳 많은데요. 스웨덴이 187곳으로 3위, 덴마크·룩셈부르크·스페인·스위스가 186곳으로 공동 4위를 차지했습니다.
헨리 여권지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출입국 자료를 바탕으로 전 세계 199개 여권과 227개 여행 목적지를 비교하는데요. 사전에 비자를 받아야 하면 0점, 무비자나 도착비자 등으로 입국할 수 있으면 1점을 주는 방식입니다. 체류 기간이 길거나 입국 절차가 편하다고 가산점을 주지는 않죠.
헨리앤드파트너스 비자 제한 지수’라는 이름으로 2006년 시작한 여권 지수는 올해 출범 20주년에 해당하는데요. 2006년 전 세계 여권으로 사전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목적지는 평균 58곳이었지만 올해는 108곳으로 늘었죠.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의 국경은 갈등 속에서도 여행자에게 더 많이 열린 셈입니다.

한국은 지수가 처음 발표된 2006년 11위였는데요. 이후 2008년과 2009년 12위, 2010년에는 13위까지 밀렸지만 2011년부터 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9위, 2013년 7위에 이어 2014년 처음 3위에 올랐죠.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6위와 7위로 잠시 내려갔지만 2018년 다시 3위에 진입했고, 2019년 처음으로 세계 2위에 올랐습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 연속 2위를 지켰고 지난해 3위로 한 계단 밀렸다가 2026년 다시 공동 2위로 복귀했는데요. 20년간 순위는 11위에서 2위로 9계단 상승했는데요. 2018년 이후만 놓고 보면 한 번도 3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습니다.
상대국이 비자를 면제할 때는 해당 국가에 대한 호감도보다 입국자의 불법 취업·장기 체류 가능성, 경제적 이익, 외교 관계, 여권 보안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인데요. 한국의 경제 규모와 국민소득이 커지면서 한국인은 불법 체류 가능성이 비교적 낮고 관광 소비력이 큰 방문객으로 평가받게 됐습니다. 교역과 기업 활동이 확대되면서 한국인의 입국 절차를 간소화해야 할 경제적 필요도 커졌죠.
외교 관계 확대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식 사증면제협정뿐 아니라 상대국이 한국인에게 일방적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사례가 쌓였는데요. 2014년 한·러 일반여권 사증면제협정이 발효되는 등 유럽·북미를 넘어 중남미와 중앙아시아, 중동·아프리카 국가로 무비자 범위가 넓어졌죠.
2008년 전자여권 도입과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도 주요한 변곡점이었는데요. 전자여권의 위·변조 방지 기능과 분실 여권 관리, 출입국 정보 공유 등은 상대국이 비자를 면제할 때 요구하는 핵심 조건이죠. 결국, 한국 여권의 상승은 경제력과 외교 관계, 출입국 관리에 대한 신뢰가 오랫동안 쌓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헨리 여권지수가 비교하는 227개 여행 목적지에는 북한도 포함되는데요. 한국 국민은 방북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북한에서 점수를 얻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북한에 갈 수 없어 한국이 1위가 될 수 없다는 뒷말이 들리는데요.
하지만 북한은 한국과 싱가포르의 순위 차이를 만든 원인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싱가포르 국민 역시 북한을 방문하려면 사전에 비자와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요. 두 나라 모두 북한에서는 0점으로 동일한 거죠. 한국이 북한에서 1점을 추가로 얻더라도 189곳으로, 싱가포르의 192곳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한국이 싱가포르에 뒤지는 이유는 특정 국가 하나가 아니라 전체 무비자 네트워크의 차이에 있는데요.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와 중화권, 영연방 국가를 아우르는 외교 관계를 바탕으로 무비자 범위를 넓혀왔습니다. 중국과도 상호 비자면제협정을 맺어 일반여권 소지자가 30일까지 무비자로 머물 수 있죠.
그렇다면 북한 여권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요. 북한은 이번 지수에서 97위로, 사전에 비자를 받지 않고 방문할 수 있는 목적지는 38곳입니다. 188곳인 한국과는 150곳 차이가 나는데요.
다만 이 숫자가 북한 주민의 실제 여행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죠. 헨리 지수는 여권 소지자가 상대국에서 비자를 요구받는지만 따질 뿐, 북한 당국의 여권 발급이나 출국 허가 여부는 반영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지수상 최하위는 아니지만, 일반 주민의 해외여행은 극도로 제한되는데요. 여권지수에 나타난 수치와 북한 주민이 실제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죠.

지난 20년간 여권 순위의 변화는 각국이 무비자 기반을 언제, 얼마나 넓혔는지를 보여줍니다.
일본은 지수가 처음 발표된 2006년부터 이미 세계 3위였는데요. 1960년대부터 선진국 체제에 편입돼 경제력과 해외여행 수요를 키웠고 1988년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에 가입하는 등 주요국의 문도 한국보다 일찍 열었죠. 2018년 처음 단독 1위에 오른 뒤 2022년까지 정상을 지켰고 올해는 한국·UAE와 함께 공동 2위입니다.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목적지까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일본보다 출발이 늦었음에도 2010년대 들어 범위를 빠르게 넓혀 올해 나란히 188곳을 기록했죠.
중국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2006년 70위권 후반, 2016년 87위였던 순위가 올해 59위까지 올랐는데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동·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비자면제협정을 확대하고 있지만, 미국·캐나다·영국 등 주요국의 문턱은 여전히 높죠. 최근 외국인에게 중국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어도 상대국이 중국인에게 같은 혜택을 주지 않으면 중국 여권 점수에는 반영되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은 2006년 공동 1위에서 올해 10위로 밀렸는데요. 미국인이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국가가 크게 줄었다기보다 싱가포르와 한국, 일본, UAE 등이 무비자 네트워크를 더 빠르게 확대한 결과입니다. 자국민이 해외에서 누리는 혜택에 비해 외국인의 미국 입국 문턱이 높다는 상호주의의 불균형도 약점으로 지목되죠.

가장 극적으로 순위가 오른 나라는 UAE입니다. 2006년 62위였던 UAE는 무비자 목적지를 153곳 늘리며 올해 한국·일본과 함께 공동 2위에 올랐죠. 헨리 여권지수 역사상 가장 큰 상승 폭인데요.
UAE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항공·물류 중심지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비자면제협정을 적극적으로 확대했습니다. 에너지 수출국에서 금융·관광·투자 중심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이동의 자유를 외교 전략으로 활용한 결과죠.
다만 여권 순위가 국민이 누리는 실제 이동의 자유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헨리 지수는 무비자 입국뿐 아니라 도착비자와 전자여행허가도 동일하게 1점으로 계산하는데요. 여권 발급과 출국 자체가 통제되는지, 전쟁이나 치안 문제로 방문이 어려운지 등도 반영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순위는 상대 평가인데요. 무비자 목적지가 줄지 않아도 다른 나라가 더 빠르게 늘리면 순위가 내려가고, 몇 곳만 추가돼도 공동 순위가 몰린 구간에서는 여러 계단 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