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온라인 쇼핑몰 사장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웹에서 주문이 접수되면 이를 엑셀로 옮겨 재고를 정리하고 다시 라벨 프린터 프로그램에 주문 정보를 복사해 붙여넣어 송장을 뽑는다. 시간이 지체되고 오류가 생기고 주문이 몰리는 날은 밤을 새운다. 대기업이라면 통합 전사시스템이 처리했을 일이다. 소상공인은 그런 시스템을 갖출 돈도, 이를 다룰 인력도 없다. 이 격차가 곧 생산성의 격차이고 폐업 100만이라는 숫자의 밑바닥에 깔린 현실이다.
역사는 비슷한 장면을 보여준 바 있다. 전기 모터가 보급된 초기, 증기기관 자리에 모터만 바꿔 단 공장은 생산성이 오르지 않았다. 동력에 맞춰 작업 흐름 전체를 다시 짠 공장만이 도약했다. PC 보급 초기에도 컴퓨터는 한동안 비싼 타자기에 머물렀다. 기술이 아니라 ‘연결’이 생산성을 만든다는 것이 두 전환기의 교훈이다.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는 바로 이 연결의 문제를 푸는 기술이다. AI 에이전트는 주문 내역을 읽어 재고 장부에 반영하고 라벨 출력까지 이어주는, 소프트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단절을 사람 대신 메우는 디지털 일손이다. 과거에는 값비싼 시스템 구축 사업이 필요했던 일을 이제 말로 지시해 처리할 수 있다.
변화는 상거래의 앞단에서도 진행 중이다. 오픈AI의 인스턴트 체크아웃, 마스터카드의 에이전트 결제처럼 AI가 검색·주문·결제를 대신하는 AI 커머스가 이미 주류로 진입했다. 광고비의 규모가 아니라 데이터와 노하우의 깊이가 경쟁력이 되는 시장에서, 30년 도메인 지식을 가진 동네 가게는 처음으로 대기업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국민의 생성형 AI 활용도는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정작 소상공인의 일터는 여전히 복사와 붙여넣기의 경제에 머물러 있다. 디지털 전환기에 정부는 키오스크와 온라인 입점을 지원했지만, 그 결과는 플랫폼 종속과 광고비 부담이었다. 도구를 쥐여주는 지원과 일하는 방식을 바꿔주는 지원은 다르다.
더군다나 소상공인에게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시작이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고, 실패가 두려워 미룬다. 그러나 곁에서 첫 설정을 도와줄 조력자만 있으면 의외로 빨리 넘어서는 문턱이기도 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모두를 위한 AI’가 답해야 할 지점이 여기다. 첫째, 지원의 초점을 장비와 바우처가 아니라 ‘연결’에 두어야 한다. 소상공인이 이미 쓰는 도구들을 AI 에이전트로 이어주는 업종별 표준 모델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다.
둘째, 조력자를 제도화해야 한다. 지난해 ‘쉬었음’ 상태의 20·30대 청년이 71만 명을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AI를 다루는 청년들이 상권 단위로 소상공인의 업무 전환을 돕게 하면, 소상공인의 생산성과 청년의 일자리라는 두 과제를 하나의 정책으로 풀 수 있다.
셋째, 그 과정에서 쌓이는 주문·단골 데이터가 플랫폼이 아니라 소상공인 자신의 자산이 되도록 개방형 데이터 기반을 설계해야 한다.
AI가 대기업 전유물에 머물면 격차는 벌어지고 폐업 행렬은 길어질 것이다. 반면 소상공인의 손끝에 닿는 순간, AI는 가장 넓은 저변의 성장 동력이 된다. 모두를 위한 AI인가, 힘센 자를 위한 AI인가? 그 갈림길은 소상공인의 책상 위, 복사·붙여넣기가 사라지는 자리에서 판가름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