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오건영의 금융진단] 엔약세 장기화에 딜레마 빠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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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와 만나 물가자극 불안 커져
빠른 금리인상은 엔캐리 청산 우려
부작용 적은 연기금활용 등 고민중

달러 대비 엔화 가치를 나타내는 엔·달러 환율이 162엔을 넘어서며 엔 약세에 대한 일본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가장 큰 이슈는 엔 약세의 장기화인데, 엔 약세는 최근의 고유가와 맞물리게 될 경우 수입 물가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이는 일본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일본 소비자물가지수는 일본 당국이 목표로 하는 2.0%를 꽤 많이 넘어서 있다. 물가 상승은 일본 서민 경제에는 치명적인데, 특히 30여 년 동안 디플레이션 상황 속에 머물러 있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을 알고 있기에 일본 당국 역시 엔 약세의 장기화를 제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 재무성은 재무상을 비롯한 다양한 관료들의 구두 개입을 통해 엔 약세를 억제하려고 노력했고, 실제 최근 달러당 160엔을 넘어서게 되자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환율 방어, 즉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한 정책적 시도를 했던 바 있다. 또한 일본은행 역시 2024년 이후 장기간 이어지던 제로 금리 시대를 종식시키며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는데 1990년대 이후 최초로 1.0%까지 기준금리가 인상된 상태다.

그러나 이런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엔 약세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2024년 트라우마가 기저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해 7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엔 약세를 강하게 억제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금리 인상을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일본 금리 인상은 엔화 보유 시 받을 수 있는 이자 액수를 끌어올리며 엔화의 매력을 높이게 된다. 엔 약세를 제어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인데, 이 과정에서 엔화 강세에 대한 우려가 급격히 커지게 되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자극하게 됐다.

일본 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서 보다 높은 금리를 주는 해외에 투자하는 방식이 엔캐리 트레이드다. 이 과정에서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서 해외의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데 자연스레 ‘엔 약세 & 해외 통화(특히 달러) 강세’가 부각된다. 일본 내 엔캐리 트레이드 투자자는 해외의 높은 금리뿐 아니라 해외 통화 강세(엔 약세)를 통한 환차익까지 얻을 수 있기에 대규모로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급격한 일본 내 금리 인상과 엔 강세 전환 우려는 이런 엔캐리 트레이드를 한꺼번에 되돌리게 만든다. 해외 자산 매각과 함께 달러를 매각하고 엔화를 사서 일본 본국으로 빠른 회귀를 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엔 강세가 심화되며 일본 금융 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 2024년 8월에 있었던 이 사건을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라고 하는데, 이 충격에 놀란 일본은행은 강한 금리 인상 기조에서 물러난 바 있다.

엔 약세가 심화된다고 해서 일본 당국이 다시금 강한 금리 인상 등으로 대응했을 때 다시금 엔캐리 청산 우려가 커질 수 있기에 이후 금리 인상 시기마다 일본은행은 매우 소극적(?)인 금리 인상을 진행, 스스로 금리 인상의 효과를 희석시키게 되었고, 엔 약세는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연기금이라고 할 수 있는 GPIF(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의 해외 투자 비중을 축소하고 일본 국내 투자 비중을 늘릴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GPIF는 약 2조달러 규모에 달하는 거대한 공룡인데, 여기서 해외로 나간 엔화 자금을 회수해 일본 국내에 투자를 하면 과격한 금리 인상 등의 부작용을 거치지 않더라도 엔 약세를 제어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물론 규모와 방식, 진행 속도와 시기 등에 따라 효과가 크게 차이날 수 있겠지만 추가적인 엔 약세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일본 당국의 스탠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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