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 반복 오롯이 개인 몫일뿐
세심한 정책적 관심·지원 집중되길

요즘 세대는 결혼정보회사를 ‘결정사’라고 부르고, 임신·출산·양육을 ‘임출육’이라 줄여서 말한다는 사실을 예전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난자 냉동 이야기도 대학원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의 경험담을 통해 처음으로 접했다. 당시 28살이었던 딸에게 엄마가 직접 난자 냉동을 권유하며, “우리 딸이 언제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나이 차서 결혼시장에 나갔을 때 ‘아이 못 낳는 여자’로 (낙인) 찍혀 몸값 떨어지는 건 원치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드는데 그건 엄마가 감당할 테니 걱정 말고 산부인과에 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단다.
난자 냉동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여전한데, 그 후 강산이 한 번쯤 변할 만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난자 냉동은 여전히 ‘쉬쉬 하며 이루어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룬 선택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니(▶본지 5월 12일 자 [마감 후] “난자냉동까지 기자가 직접 하나”라는 질문 앞에서),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 곤혹스러움이 밀려온다.
하기야 전 세계 여성의 98%가 입덧을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입덧이 왜 발생하는지 원인도 오리무중이고 메커니즘조차 불분명하다니, 여성의 자궁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화성 표면에 대해 알려진 것보다 열악하다는 주장이 과장만은 아닌 듯하다. 덕분인가, 인공지능시대란 표현이 무색할 만큼 임출육에 관해서는 왕초보 수준의 정보가 넘쳐나고, 그 속에서 개인들은 저마다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반복 중이니 말이다.
실제로 여성의 출산 경험을 인터뷰해 보니, ‘출산의 의료화’ 덕분에 관련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여성 개인의 경험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 속에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통이 급격히 진행되어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후 눈을 떠보니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들이 자신의 품안에 안겨있었는데 너무 낯설고 당혹스러웠다는 34세 산모도 그중 하나다. 33세 산모의 사연은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그녀는 제왕절개 후 열이 안 떨어져 계속 항생제를 투여하느라 모유 수유를 못하고 있었다. 마침 문안 온 사촌언니가 증상을 보더니 아무래도 젖몸살인 것 같다고 해서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최고의 시설을 갖췄다는 병원에서 젖몸살 하나 관리받지 못했다니….
산후조리원 후기에도 개개인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무조건 모유 수유가 최고라고 했던 전문가가 너무 원망스럽다. 원래부터 젖이 부족했던 아내는 아내대로 마음고생이 심했고, 아들 녀석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파 울기만 했으니…”처럼 안타까운 사연 뒤로, 원래도 젖이 풍부했던 산모가 럭셔리 산후조리원에서 젖 잘 도는 마사지를 서비스받은 후 오히려 젖을 짜내느라 번거롭고 고생스러웠다는 경험담도 올라와 있었다.
“점점 산모들의 의식주가 좋아지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잘못된 지식이든 잘된 지식이든 습득하니까, 진찰을 해보면 산모들이 전문가인 조산사보다 똑똑해요. 그래서 아이 받기가 너무 힘들어지고 있어요. ‘인터넷은 얼굴 없는 폭력이다, 인터넷에서 본 걸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소용이 없어요.” 요즘은 엄마에게 비밀로 하고 자신을 찾아오는 딸들이 있다면서 마지막 남은 조산사가 들려준 이야기 속엔 귀 기울일 만한 지혜가 담겨있는 듯하다.
합계출생률 0.8명 수준을 기록 중인 세계 1위의 초저출생 국가로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용한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임신 출산 육아 가운데 육아 못지않게 임신 및 출산 과정에도 정책적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리란 생각이다. 국가적 차원의 이슈라면서도 결국은 전 과정이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자 책임으로 남아있는 답답한 현실을 계속 외면해선 안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