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월드컵 탈락에서 읽는 ‘책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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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통감이 신뢰회복 뜻하진 않아
선관위·검찰권 등 실패통해 배우고
목적 명확한 간섭으로 책무 다해야

사상 최고의 선수 구성과 조 편성이라며 크게 기대했던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1승 2패 34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탈락 다음날 홍명보 감독은 “모두 내 책임”이라며 사퇴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퇴가 결과를 바꾸지는 못한다. 대표팀의 탈락도, 선수들의 운명도, 팬들이 기대했던 시간도 되돌릴 수 없다. 과연 ‘책임’이란 무엇인가?

사후 책임을 통감하며 물러나는 것도 요즘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누군가 책임을 지는 것이 어느 정도 심리적 보상은 되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애초에 이런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패배를 끌어안고 물러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결과에는 책임을 묻지만, 그 결과로 이어질 결정을 미리 검증하는 데는 소홀하다. 그 책임 추궁의 목소리는 지나친 간섭을 막고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는, 우리가 늘 들어온 명제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선거가 도마에 올랐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더해, 셀프 결재 병가나 무단 출장 같은 일탈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선거기간 중 육아휴직 급증은 법이 보장한 권리이지만, 정작 그 공백을 메울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았다. 독립성이라는 대의를 지키느라 외부 견제가 사실상 막혀 있고 이를 풀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 선관위를 성역으로 만들었다. 자율성만 확보하고 책임은 소홀히 한 것이다. 선관위원장도 “책임을 통감”했지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큰 비용이 든다.

이처럼 자율적 의사결정의 위험을 줄일 제도적 장치가 논의되지만, 제도 개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사례가 보여준다. 1995년 한 트레이더의 통제받지 않은 거래로 233년 역사의 베어링스 은행이 무너진 뒤 금융권은 내부통제를 강화했다. 지나친 자율성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1년 크레디트스위스의 영업부서는 내부 리스크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특정 고객에게 대규모 레버리지를 제공했으며, 그 결과 55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자율이 성과를 높인다는 믿음은, 이렇게 종종 필요한 통제를 간섭이라는 이름으로 따돌린다.

결국 핵심은 자율적 의사결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목적과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결정이 목적에 어긋나면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결과가 나온 뒤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잘못되지 않도록 결정 단계에서 미리 검증하는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집행이라는 선관위의 목적이 명확했다면, 필요인원을 확보할 수 없게 만드는 휴가 신청과 승인은 애초에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게 된다.

자율성에는 빠른 실패를 통한 학습이 따라야 한다. 실패에서 배우려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 근거가 있어야 무엇이 틀렸는지를 짚어 다음 결정을 고칠 수 있다. 오직 성과로만 평가받으면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추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손실을 키운다. 반면 학습을 중시하면 무엇을 배웠는지에 집중하기에, 잘 안 되는 것을 빠르게 인정하고 멈출 수 있다.

자율적 결정이 독단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심리적 안정감에 바탕을 둔 건전한 비판이 허용되어야 한다. 평가전에서 드러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도 “감독이 알아서 하겠지”라며 검증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검증하지 않은 쪽이 더 크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검찰 보완수사권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검찰의 권한 남용이 문제였다면, 그 권한이 경찰로 옮겨갈 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무엇인가? 견제자를 하나 더 두느냐가 아니라, 권한을 받은 쪽이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구조가 설계되었는가가 핵심이며, 더 중요한 것은 목적이다. 목적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형사 집행이 아닐까? 그렇다면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려 고통받는 사람만큼이나, 범죄 피해를 입고도 수사가 부실해 2차 피해를 받는 사람도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 곳곳에서 과거보다 책임 의식이 옅어졌다고 느낀다. 그러나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보다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가 더 문제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율성 부여 자체가 목적이 되어, 독립성과 자율성을 흔드는 간섭은 무조건 나쁘다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게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간섭은 나쁠지언정,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그 목적에 맞게 가고 있는지 평가하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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