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교섭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빠르게 확대된 반면, 정작 그 교섭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현장에서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상급단체의 모범 단체협약안이 사실상 그대로 요구안으로 제시되면서, 임금과 근로시간은 물론 근로시간면제, 체크오프, 노조 편의제공, 자료제공 등 방대한 조항이 한 번에 제시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경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앞서고, 노동조합은 기대 수준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조직의 의미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간극이 조정되지 않으면 첫 교섭부터 감정적 대치로 흐를 위험이 크다.
특히 최초 교섭에서 유의해야 할 지점은 인사·경영권 관련 조항에 포함되는 ‘사전 협의’ 문구이다. 법리적으로 ‘협의’는 ‘합의’와 구별되며, 사용자가 성실한 협의 절차를 거쳤다면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도 인사나 규정 변경을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협의’라는 문구 자체가 절차적 통제 수단으로 작동하면서, 노동조합이 “충분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근거가 된다. 이 경우 법적 판단과 별개로 현장에서는 분쟁 리스크가 상시화되고, 사용자는 사실상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불필요한 긴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최초 단체협약에서부터 조항의 범위와 수준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인사·경영권과 직접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협의’가 아닌 ‘의견 청취’ 또는 ‘사전 통보’ 수준으로 정리하고, 실제 운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단체협약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전제로 하는 규범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 단체협약은 단순히 당해 연도의 임금인상률을 정하는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해당 사업장의 향후 5년, 10년의 노사관계 구조를 형성하는 기본 틀이 된다. 한 번 포함된 조항은 이후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쉽게 수정되기 어렵고, 현장과 괴리된 선언적 문구나 과도한 제한 규정은 결국 노사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금과 같은 변화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요구를 얼마나 방어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수용하고 무엇을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 역량이다. 교섭의 문이 열린 지금, 단체협약은 더 이상 형식적인 문서가 아니라 노사 모두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핵심 장치가 되고 있다. 축적된 법적 기준과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울 것인지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준 노무법인 라움 대표·공인노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