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인력으로부터 제작 장벽 해체
‘상상력의 민주화’ 실현가능 주목돼

영화 ‘아이엠 포포’가 개봉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공지능으로만 만든 한국 최초의 장편 영화다.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장편 영화 ‘넥스트 스톱 파리’가 올해 1월 미국에서 공개된 지 넉 달 만이다.
캐릭터의 외형과 움직임, 배경을 비롯한 모든 장면을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만들었다. 단 두 달이 걸렸다고 한다. 영화는 인간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로봇 ‘포포’ 이야기를 그린다. 확률로 판단하는 인공지능과 희망을 믿는 인간이 충돌한다. 인공지능이 만든 영화가 동시에 그 존재 자체를 묻는 아이러니다.
‘한복 입은 남자’는 시나리오부터 영상 장면까지 전체 제작 과정에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했다. 17세기 화가 루벤스의 그림 속 동양인이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하는 대체 역사 판타지다. 미드저니, 챗GPT, 베오3, 클링 등 인공지능 기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제2회 대한민국인공지능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부산국제AI영화제, 홍콩필름마켓 등에 초청되며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영화는 언제나 카메라와 피사체의 예술이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사람과 풍경, 동작과 표정이 모두 피사체가 되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카메라와 피사체가 없는 영화의 형식을 이미 알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모든 프레임은 인간이 손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만들어진다. 1초에 24장, 장편 한 편에 수십만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십 명의 전문 인력이 여러 해 동안 투입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영화다. 물론 애니메이션도 초기에는 그림을 그려놓고 프레임 자체를 피사체 삼아 카메라로 찍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기술의 발달은 카메라를 없애버렸다.
인공지능 영화는 카메라와 피사체 없이 만들어진다.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도 그렇다. 인공지능 영화가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열어젖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니메이션(animation)이라는 단어 안에는 인간의 노동이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영화는 거기서 알파벳 ‘n’을 삭제한다. ‘에이아이메이션(aimation)’이라고 불러도 좋을 새로운 영화 형식의 탄생이다.
말장난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영상을 생성하는 방식은 구조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제작 원리를 빼닮았다. 실사 영화는 현실의 대상을 카메라로 찍는다. 인공지능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픽셀 단위로 만들어 낸다. 인공지능이 삭제하는 ‘n’은 기존의 관행(norm)일 수도 있고, 인간의 반복적 수작업(needle)일 수도 있고, 섬세한 감각(nuance)일 수도 있다.
물론 실사 영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실존하는 인간의 얼굴, 배우의 표정, 카메라가 포착하는 현실의 질감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상의 가치를 이어갈 것이다. 디지털카메라가 필름을 완전히 대체한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오히려 종이책과 전자책이 공존하듯, 실사 영화와 인공지능 영화가 공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생성형 인공지능을 그저 새로운 도구 하나가 등장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영화 제작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통 애니메이션은 접근 장벽이 높았다. 개인 제작자는 자본과 인력, 시간이라는 조건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인공지능 영화는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영화를 만들고 상영까지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한다. 1인 제작자라도 장편 영화를 두 달 만에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에너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곳곳에서 인공지능 영화제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부산국제AI영화제, 서울국제AI필름페스타 등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공지능 영화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프랑스 니스에서 출발한 세계인공지능영화제(WAIFF)는 올해 서울을 포함한 글로벌 에디션을 개최하며 칸영화제 초청이라는 국제 순회의 형식을 갖췄다. 영화제는 제작자를 모으고, 시장을 만든다. 인공지능 영화제의 확산은 ‘에이아이메이션’이 일시적인 실험이 아니라 독자적인 장르로 정착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이아이메이션’은 영화의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 본연의 정신, 즉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 내는 상상력’의 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거대 스튜디오의 전유물이었던 영상 제작이 이야기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나눠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이 남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