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P ‘ONE’터치] 내가 소유한 그림, 어디까지 '내 것'일까? 소유권과 저작권의 아슬아슬한 동거

기사 듣기
00:00 / 00:00

구창훈 ‘법무법인(유한) 원’ 미디어 & 엔터테인먼트팀 변호사
▲생성형 AI에게 유명 작가의 현대미술작품이 걸린 카페 공간을 광고 촬영하는 모습을 구현해달라고 요청했다. (미드저니)

커다란 카페를 새롭게 오픈한 A씨. 인테리어에 큰 공을 들인 덕분에 손님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내친김에 A씨는 큰맘 먹고 유명 아티스트의 현대 미술 작품을 사서 카페 벽에 걸었습니다. 작품 하나로 카페 분위기가 한층 더 세련되어 보입니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한 광고회사로부터 카페를 대여해 광고를 찍고 싶다는 제안까지 들어왔습니다.

A씨의 허락을 받은 광고회사는 그 그림을 주된 배경으로 활용해 멋진 광고 영상을 제작했고, 이는 곧 TV로 방영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광고회사는 청천벽력 같은 내용증명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그린 원작자가 "동의 없이 내 그림을 상업 광고에 사용했다"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한 것입니다.

광고회사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림 소유자인 A씨에게 분명히 허락을 구했고, 비싼 장소 대여료까지 지불하며 촬영했는데 저작권 침해라니 납득하기 어려웠죠.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냉정했습니다. 재판 결과, 광고회사는 미술품의 저작권자에게 상당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소유자의 허락만 철석같이 믿었던 광고회사가 고스란히 법적 책임을 떠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돈을 주고 산 소유물이라면 내 마음대로 처분하고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소유물이 '저작물'일 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물건으로서의 그림에 대한 '소유권'을 가졌다고 해서, 그 그림 속에 녹아 있는 예술적 가치인 '저작권'까지 함께 취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계약이 없는 한 소유권과 저작권은 완전히 분리되어 제각각 움직입니다.

이러한 소유권과 저작권의 혼동 사례는 우리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 티셔츠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전 국민의 응원복이었던 'Be The Reds' 문양이 새겨진 붉은 티셔츠를 기억하실 겁니다. 2002년 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붉은 물결과 열광적인 응원 장면은 지금도 많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골 소재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방송 출연자들이 단체로 이 'Be The Reds' 티셔츠를 직접 구입해 입고 나와 당시를 회고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해도 괜찮을까요? 내가 대가를 치르고 정당하게 산 내 소유의 옷을 입고 촬영하는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방송사가 위 티셔츠를 활용하여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Be The Reds'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티셔츠에 새겨진 독창적인 붓글씨 형태의 'Be The Reds' 글자 도안 자체가 법적인 보호를 받는 독립된 미술저작물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개인이 티셔츠라는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한 것과, 그 옷에 인쇄된 '저작물(로고 디자인)'을 상업적 목적의 방송 영상에 노출하여 복제·이용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미술품의 소유자가 유의해야 할 점이 또 있습니다. 바로 '전시'입니다. 전시권은 원래 저작권자의 권리이지만, 우리 저작권법은 원본의 소유권자에게도 전시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로·공원·건축물의 외벽과 같이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에 작품을 항시 전시할 때에는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한 음식점 주인이 특정 그림 원작을 모사한 대형 그림 3점을 표구사에서 구매하여 자신의 식당에 게시한 사건입니다. 원작자가 자신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니 식당에 걸지 말라고 항의하였음에도 주인이 이를 거부하자, 원작자인 화가가 자신의 전시권이 침해되었다며 식당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비록 식당 주인이 그림을 모작한 당사자가 아니고 표구사를 거쳐 정당하게 매수했더라도, 원작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해당 복제물을 상업적인 음식점 내에 계속 게시하여 대중에게 보여준 행위는 원작자의 고유 권리인 '전시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로 인해 식당 주인은 결국 1,300만 원을 배상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내돈내산’ 소유물이라 할지라도,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체 뒤에는 저작자의 무형의 권리가 숨어 있습니다. 소유권과 저작권은 엄연히 별개의 권리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도움]

‘법무법인(유한) 원’ 미디어·엔터테인먼트팀은 영화, 방송, 공연, 매니지먼트, 웹툰, 출판, 캐릭터 등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걸쳐 자문과 소송을 수행해 왔다. 콘텐츠 산업에서 요구되는 전문성과 풍부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최적의 법률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23년, 2024년, 2025년 ABLJ(Asia Business Law Journal)이 선정한 ‘한국 최고 로펌’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리며 엔터테인먼트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