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정당주의 한계로 불신 자초
선관위·거대양당 개혁 시급함 알려

말도 탈도 많았던 6·3 지방선거가 여러 사람을 반성하게 하며 끝났다. 우선, 심판으로서 공정하면서 정확한 투표를 보장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터무니없는 잘못을 범한 데에 질타를 피할 수 없다. 하필 야권 지지세가 강한 서울 남부 지역에서 투표지 부족이라는 황당한 일을 일으켜 선거 전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죄는 가볍지 않다. 단순한 사과와 문책으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선관위의 근본적 변혁을 향한 문이 열렸다.
대오각성은 정치권의 몫이기도 하다. 특히 참패한 야당 국민의힘은 차마 면상을 들 수 없을 지경이다. 상대방의 압승은 국민의힘의 자업자득이다. 그 지도부는 알량한 당권에 취해 당내 합리적 비판론자들을 축출했다. 극우 세력의 지지를 얻는 데 급급해, 계엄령으로 국민의 역린을 건드려 탄핵 파면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조차 못했다. 여당 더불어민주당도 한편으로 압승에 흥분하면서도 다른 한편 마음속으로 뜨끔할 것이다. 민심이 정말 자기편이기보다는 야당의 자해 행위에 대한 반대급부로 득을 봤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강경파가 주도한 억지 공천으로 논란이 일었던 지역마다 유권자는 차가운 반응으로 여당 지도부에도 경고를 보냈다.
거대 정당들의 지도부를 특히 긴장하게 만들고 면목 없게 하는 건 몇몇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善戰)이다.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동훈 후보는 연고도 없이 혈혈단신 뛰어 승리를 거뒀다. 전북도지사 선거에서 김관영 무소속 후보는 당선되지는 못했으나 40%를 훌쩍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두 사람은 원래의 소속 당이 다르나 각기 당 지도부에게 찍혀 밀려나 부득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주지하듯이 한국의 정치 환경은 무소속 출마자에게 너무 불리하다. 정당들이 헌법에 근거해 법적 보호를 받고 국고의 지원을 받으며 소속 후보자들에게 조직상의 이점과 재정적 혜택을 제공하고 선거운동까지 해주는 것과는 달리, 무소속 후보는 악조건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조직, 재정, 전략 차원의 열악함보다 더 큰 어려움은 유권자의 인식에 있다. 유권자의 고정관념에서 무소속 후보는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이거나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망상증 외톨이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한 초등생이 유세 중인 한동훈 후보에게 “아저씨, 무소속 안 쪽팔려요?”라고 물었겠는가.
그럼에도 한동훈, 김관영 두 후보가 민심의 호응을 얻은 건 기존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의 실망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정청래, 장동혁이라는 거대 양당의 대표들은 밖으론 대화보다 공격을, 안으론 포용보다 배제를 중시했고, 이로 인한 경직된 집단주의적 대결이 국민의 정당 불신과 환멸을 증대시켰을 것이다. 이런 상황적 이유뿐 아니라, 각종 사회이익이 파편화하고 사회관계가 복잡하게 급변하는 오늘의 전환기적 추세가 단순한 진영논리에 입각한 정당 지상주의의 적실성을 떨어뜨렸다는 근본적 이유도 무소속 후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기성 정당들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무소속의 약진은 그 청신호를 뜻한다. 획일적·폐쇄적 집단주의로 국정 추진력과 정치적 구심점을 제공할 수는 없다. 시대에 맞는 ‘큰 우산’, ‘큰 텐트’로서 내적 다양성과 외적 유연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 과제는 이번에 참패한 국민의힘의 발등에 당장 떨어진 불이다. 국민의힘만큼 절박하진 않아도 더불어민주당 역시 추구해야 할 과제다. 신경 쓰지 않으면 국민의 정당 불신감에 권력 견제 심리가 가미돼 2년 후 국회의원 선거와 그후 대통령 선거에서 큰코다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매너리즘을 벗고 변혁해야 할 곳으로 선거관리위원회와 거대 정당들을 지목해 주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