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비정규직은 다르다” 인식 바꿀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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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신분성’ 판단 두고 논란분분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 ‘위헌’이 대세
임금 등 달리 해온 관행 점검 필요해

A 씨와 B 씨는 같은 회사 같은 팀에서 일한다. 옆자리에 앉아 같은 거래처를 상대하고 같은 보고서를 쓴다. 입사 연차도 비슷하고 근무 평가도 비슷하다. 다만 A 씨는 정규직이고 B 씨는 무기계약직이다. 연말 성과급도, 명절 상여도, 복지포인트도 A 씨에게만 들어온다. 이유를 묻자 회사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은 채용 경로가 다르고 적용되는 사규가 다르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하여 성별·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제6조).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까지 따른다(제114조 제1호). 그런데 네 가지 사유 중 ‘사회적 신분’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법규정에 정의가 없고, 학설도 출생에 의한 지위만 보는 견해와 후천적 지위까지 포함하는 견해로 갈린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 시부터 균등처우 조항을 두었는데, 그 내용은 일본 노동기준법의 그것과 거의 같다. 해당 일본 법규정은 본래 식민지 출신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바, 오래전부터 사회적 신분을 ‘생래(生來)의 신분’으로 좁게 해석했다. 그 한 예가 에도 시대 특정 계급이 모여 살던 부락(部落) 출신자를 사회적 신분으로 본 사례다. 결국 일본에서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은 이 조항이 적용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다. 때문에 조문 내용은 거의 흡사했지만, 그 해석은 달라졌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신분을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전과자가 이에 해당한다고 봤다(헌재 93헌바43). 즉, 사회적 신분을 출생에 의한 신분으로 한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후 우리 법원은 이를 좁게 해석하여, 자신의 의사나 능력으로 회피할 수 없는 지위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무기계약직이라는 지위는 본인이 입사하면서 갖게 된 것이고 이직하면 사라지므로 사회적 신분이 아니다. 결국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호봉직과 연봉직 사이의 처우 격차를 다투는 사건은 근로기준법 제6조로 포섭되기 어려웠고, 특별법(기간제법 등)상 차별금지 조항이 문제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경향이 달라지고 있다. 대법원은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이 같은 사무소의 공무원과의 처우 차이를 다툰 사건에서 사회적 신분 해당성을 부정하면서도,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로 한정하여 일반론을 유보했다(대법원 2016다255941). 사기업 영역이나 비교 대상이 공무원이 아닌 사안에서는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단서다.

이 단서를 메우는 판결들이 하급심에서 꾸준히 누적되고 있었다. 일찍이 한 판결은 같은 회사의 일반직에게는 각종 수당을 지급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무기계약직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것이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이라고 판단했다(서울남부지법 2014가합3505). 다른 판결은 무기계약직이 정규직보다 자격이나 능력이 열등하다는 사회적 평가가 존재한다고 보고 사회적 신분 해당성을 인정했다(서울중앙지법 2017가합507736).

특히 최근 국립대학법인의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된 자체 직원이 정규직 법인 직원과의 차별을 다툰 사건에서, 법원은 자체 직원이라는 고용형태상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봤다(서울중앙지법 2023나64678, 대법원 2025다211359호로 계속 중). 종래 법원이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에서 제외해 온 핵심 논거는, 본인이 그 지위에 머물지 회피할 수 있는지 여부, 즉 ‘회피 가능성’이었다. 무기계약직은 본인이 이직하면 벗어날 수 있는 지위이므로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 사건 법원은 신앙도 본인이 바꿀 수 있고, 국적도 변경 가능하며, 성조차 변경 가능한데, 이들이 모두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된 이상 유독 사회적 신분에만 회피 불가능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짚었다. 또한 무기계약직 전환이 외형상 본인 선택이더라도 기간제로 남는 것보다 나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점, 이를 사회적 신분에서 제외하면 차별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점도 지적됐다.

같은 시기 주목할 판결이 또 나왔다. 같은 회사 안에서 직군이 나뉘어, 한쪽은 호봉제 호봉직, 다른 한쪽은 연봉제 연봉직(무기계약직)으로 운영되는 사안에서 두 직군 사이에 격차가 있었던 사건이다. 법원은 사회적 신분을 “사회 제도나 문화, 관행 등으로 인하여 근로 내용이나 가치와 무관하게 근로조건 결정을 일정한 범위 내로 정형화·토착화시키는 사회적 힘을 가진 계속적 지위”라고 하며, 무기계약직과 그에 준하는 연봉직도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봤다(서울고법 2024나2013287). 나아가 직군 등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 차별 자체가 헌법상 평등권 침해에 해당하여 손해배상이 별도로 가능하다고 봤다.

회사는 B씨에게 채용 경로와 사규의 차이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금까지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답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사이의 처우 격차는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로 다퉈질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헌법상 평등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이라는 우회로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로서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호봉직과 연봉직 등 고용형태에 따라 임금·수당·복리후생을 달리 적용해 온 관행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처우 차이가 직무 내용이나 가치에서 비롯된 합리적 이유로 설명되는지, 채용 경로의 차이를 넘는 근거가 있는지 점검하지 않으면, 어느 날 법정에서 비로소 그 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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