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토템' 늑구…"가출했더니 내가 슈퍼스타" [요즘,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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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토템' 늑구…"가출했더니 내가 슈퍼스타" [요즘, 이거]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늑구야 물어

그저 늑구만을 외쳤던 열흘. 전국구 슈퍼스타가 된 늑구를 그 누구보다 ‘동향인(?)’들이 애타게 외쳐왔는데요. 늑구 자신도 모르게 ‘승리 토템’이 돼버린 어지러운 상황. 반쯤은 농담 섞인 ‘승요(승리요정)’였지만, 무사 귀환과 동시에 벌어진 승리 행진에 저절로 믿음은 솟아났습니다. “아 위대하신 늑구님이시여”

본능이 이끌리는 대로 땅을 팠다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며 나름 신나는 모험을 즐겼던 늑대, 늑구가 돌아왔습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더니… 이전이라면 절대 입에도 안 댔을 물고기와 나뭇잎까지 먹어 치운 늑구, 그야말로 ‘눈 떠보니 스타’의 삶을 살고 있는데요.


▲'승리 토템' 늑구…"가출했더니 내가 슈퍼스타" [요즘, 이거]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10일간의 대탈출기는 8일 오전 9시 10분께 평온하던 오월드 사파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시설 보수를 위해 잠시 열린 틈, 그리고 그 밑에 도사리고 있던 늑구의 ‘본능적 땅파기’가 발동한 거죠. 2살 수컷 늑대 늑구는 인간이 만든 철제 울타리를 비웃듯 땅을 파고 자유를 향해 질주했습니다.

대전시 전역에는 ‘늑대 탈출’을 알리는 안전재난문자가 발송됐는데요. 맹수 탈출이라는 서늘함에 탈출 초기 대전은 공포에 잠겼죠. 수색 현장을 비웃는 AI 합성 사진까지 공유되며 혼란이 야기됐고 늑구는 오월드 주변 야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신출귀몰하게 움직였는데요.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늑구의 과거가 파묘되며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오월드 탈출 늑대 평소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과 영상 속 늑구와 늑대 가족의 모습 때문인데요. 사육사에게 앵기고 먹이를 향해 눈을 반짝이는 그저 ‘댕댕이(강아지)’ 그 자체였거든요. (물론 사육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늑대는 야생성이 강한 종) 거기다 강아지 이름과 별다를 것 없는 ‘늑구’가 애정을 불러왔죠.


▲'승리 토템' 늑구…"가출했더니 내가 슈퍼스타" [요즘, 이거]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그 뒤론 “늑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운 모험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닐 생각 하니 너무 안쓰럽다”, “늑구야 고생하지 말고 돌아와”, “늑구 사살 절대 안 됨” 등의 안위와 건강을 걱정하는 반응이 이어졌는데요.

또 만평 짜리 넓은 집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란 ‘막내 도련님’이란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애처로움을 더했죠. 이어 탈출 1주일째 늑구를 찾아 헤맨 일반 시민이 발견한 늑구의 모습이 이를 증폭시켰습니다. 차량의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정면으로 받은 늑구는 도망가지 않았는데요. 그저 지켜보다 종종걸음으로 도로를 걸었죠.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대형견 같은 모습은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습니다.

늑구의 아련한 눈망울이 담긴 영상은 전국을 넘어 세계로 퍼졌는데요. 급기야 늑구는 ‘세계무대’ 데뷔까지 이뤘습니다. BBC와 CNN은 “인간이 만든 콘크리트 숲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늑대”라며 이 현상을 비중 있게 다뤘죠.


▲'승리 토템' 늑구…"가출했더니 내가 슈퍼스타" [요즘, 이거]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그런데 이런 늑구의 일탈은 생각지도 못한 ‘미신’으로 귀결됐는데요. 늑구의 자유가 길어질수록, 대전의 연고지를 둔 스포츠팀들은 지독한 ‘기운의 부재’를 겪었기 때문이죠. 팬들은 이를 ‘늑구의 저주’라 명명했습니다. 늑구가 나간 날부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독한 6연패에 빠졌고, 대전하나시티즌 역시 리그 3연패를 기록하며 중하위권으로 추락했는데요. 거기다 굳이 한화 이글스 2군(퓨처스)까지 연패 행렬에 동참하며 우울함을 더했습니다.

선수들의 어이없는 경기력에 등장하는 건 늑구였는데요. “늑구야 물어”가 분노표출 일부가 되어가더니 “늑구가 사라지니 승리가 사라졌다”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하던 생각은 늑구의 가출 기간 내내 벌어진 ‘패패패패패패’ 기록에 간절한 기도 모드에 돌입했는데요. “늑구야 제발 돌아와 줘”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죠.

그런데 진짜 공교롭게도 전날까지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할 것 같던 선수들이 18일 늑구가 돌아오자마자 폭주를 시작했는데요. 팬들보다 선수들이 진심으로 늑구 토템을 믿고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시작은 서산에서 3연승 중인 울산 웨일즈를 만난 한화 이글스 2군이었는데요. 웨일즈를 상대로 무려 13:3이라는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며 5연패를 끊어냈죠. 서울 상암에선 대전하나시티즌이 리그 강호 FC서울을 상대로 1:0 승리를 거뒀고요. 한화 이글스 역시 롯데를 상대로 5:0 완승을 거두며 연패 탈출에 성공했죠.

거기다 범한화家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팀 ‘한화생명 e스포츠’까지 기록적인 승리를 기록했는데요. 5년간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던 벽, 젠지를 2대 0으로 완파하며 매치 9연패, BO3(Best-of-3·3판 2선승제) 20연패의 저주를 풀었죠. 그야말로 늑구의 승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승리 토템' 늑구…"가출했더니 내가 슈퍼스타" [요즘, 이거]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토템’까지 장착한 늑구는 이제 명실공히 대전의 강력한 브랜드가 됐는데요. 대전의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은 늑구의 탈출부터 포획까지 모든 과정을 공유한 데다, 대전 오월드 인스타그램조차 복귀(?)한 늑구의 일지를 게재 중입니다. ‘늑구 상태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급여량, 메뉴, 수면 시간까지 상세히 공유했죠. “금일 식사 기록, 메뉴는 소고기와 생닭 분쇄육 650g, 전량 섭취 완료” 정성 가득한 TMI 식단표는 수만 개의 하트를 받았습니다.

늑구의 대탈출기는 에버랜드 ‘바오 판다 가족’에 버금가는 이슈를 만들어냈는데요. 자신을 알아봐 주지 못한 이들에게 스스로 ‘슈퍼스타’를 증명한 늑구. 굿즈 제작 청원부터 유퀴즈(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 출연 AI 사진, 당근에 올라온 3만원 늑구 사인까지 밈과 영향은 어마어마한데요. “한화 이글스, 성심당, 늑구 렛츠고”를 외칠 수 있는 정체성이 된 늑구의 슈퍼스타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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