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애석하게도 많은 이들은 이번 규제의 효과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문제의 본질을 피한 채, 파생적으로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가하는 규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많은 ‘영어 유치원’들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선행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대한민국 입시를 주도하고 있는 대치동의 유명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학교 때 고등 과정을, 초등학교 때 중등 과정을, 그리고 유치원 때 초등 과정을 선행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를 간과한 채 영어 유치원만을 대상으로 타깃 규제를 가해봤자, 대치동의 유명학원에 자녀를 입성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은 어차피 과외나 영어 유치원의 방과 후 과정 등을 활용할 것이다.
더욱이 비단 영어만이 문제겠는가. 소위 ‘대치동 선행 시스템’은 모든 과목에 적용된다. 강남 8학군도 아닌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도 대치동 유명 학원에 합격하기 위해 수학이나 국어를 3~5년 선행시키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아이가 그 과정을 충분히 소화한다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한 채 문제를 푸는 요령이나 공식을 익히는 데에 급급해한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중학생이 풀 만한 국어 독해 문제를 주는 경우도 보았다. 영어를 선행하면 정서적 학대고, 우리말을 이렇게 강압적이고 무리하게 학습시키는 건 학대가 아니란 말인가?
한 가지 희망은 있다. 이런 지나친 선행 교육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표준적인 교육 방법으로 자리 잡은 지 이제 10년 정도 되었다. 이에 따른 부작용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면서 대한민국 사교육 시스템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스스로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자정능력이 있다. 이런 자정능력을 오히려 방해하는 타깃 규제는 사회가 스스로를 조절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지금까지 사립 초등학교에 대한 규제, 자사고와 특목고에 대한 규제 등 교육에 관한 수많은 타깃 규제가 있었다.
‘영어 유치원’에 대한 규제가 딱히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아이와 부모가 모두 괴로워하는, 대한민국 특유의 교육 시스템은 조금도 나아지는 게 없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