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봄볕에 녹아내리는 듯 몸은 노곤한데, 끼니마다 없던 식욕이 생겨난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봄날이다. “당신의 몸이 요구하지 않는다면, 쌀 한 톨도 먹지 마라.” 이것은 유럽의 속담이다. 양기로 가득 찬 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몸이 요구하는 영양분도 늘어나는 새봄엔 채소와 과일을, 그리고 생선과 달걀과 우유를 자주 먹는 게 좋겠다. 풋것을 먹고 더 기운 생동하는 몸으로 계절의 나른함을 이겨내자. 묵은 김치보다는 땅의 기운을 빨아들여 약성이 생긴 새봄에 돋아난 냉이나 달래 된장국도 좋고, 고춧가루와 채 썬 무를 버무린 무생채,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와 참치액젓 같은 양념과 함께 조물조물 무친 봄동도 좋을 테다.
봄엔 들뜬 마음에 공연히 서정주의 ‘봄’이라는 시도 중얼거린다.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묻혀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 있는 하늘이어.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땅엔 복사꽃이 만개하고, 공중엔 강남에서 돌아온 검정제비가 난다. 시인은 왜 양기가 차오르고 하늬바람이 부는 봄날에 슬픈 일 있어야 한다고 했을까? 혼령이 깃든 하늘 아래에서 슬픈 일이 있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다. 시인은 정말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 걸까?
어렸을 때 몸이 마르고 병약해서 어른들의 걱정을 샀다. 그 봄에도 내 이마엔 미열이 오르고 연신 기침을 했다. 외할머니는 동네 마실을 나가고 시골집은 텅 비었다. 나는 새 홑청을 씌운 이불을 덮은 채 쓸쓸히 누워 있었다. 창호지 문은 반투명인데, 봄볕을 받아 환했다. 밖엔 복사꽃이라도 만개했던가? 봄볕 아래 갓 부화한 병아리들이 어미닭을 따라 마당에서 종종거리며 모이를 쪼던 풍경은 또렷이 기억난다. 병아리들은 금세 몸피를 키워 중닭으로 자라났다. 나도 병을 털고 일어났는데, 키가 커지고 말수가 줄어 어른스러워졌다는 말을 들었다.
봄꽃에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허파에 바람이 들어 엉덩이는 자꾸 들썩인다. 누군가 귓가에 속삭인다. 이 봄을 이렇게 뭉개고 말텐가? 어디론가 떠나라! 벚꽃 하얀 잎 분분히 날리는 경주 왕릉을 종일 보다 돌아올거나? 혹은 까마귀가 큰 소리로 울어대는 통영을 쏘다니다가 아무 식당이나 들러 멍게비빔밥이나 도다리쑥국을 먹고 올거나? 한려수도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시집을 읽다가 콧바람이라도 쐬다가 돌아오련다. 시집은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가 좋을 테다.
어느덧 외할머니도 어머니도 이 세상에 안 계시다. 두 분 다 떠나셨으니 내 인생의 봄날은 아무 보람도 없이 저물어 마음은 늘 외롭고 허전하다. 봄꽃이 만개했는데 마음 한가운데를 차지한 서글픔은 옛날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미열 오른 이마에 찬 손을 얹던 외할머니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돌아다니고, 젊은 어머니가 부엌에서 닭백숙을 끓이던 옛날이 정말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