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

문제는 이 변화가 ‘언젠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시장은 움직이고 있고, 산업은 압박을 받고 있다. 그 한복판에 주유소가 있다.
지금까지 주유소 산업은 입지와 가격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경쟁 구도로 유지돼 왔다. 하지만 이 구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내연기관 차량은 완만하게 줄고 있고, 전기차는 확실한 증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주유소는 이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많은 주유소가 ‘연료 판매’라는 단일 기능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그 전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전기차는 단순히 연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이용 방식 자체를 바꾼다. 3분 만에 떠나던 고객이 30분 이상 머무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이 변화는 작지 않다. 오히려 산업의 본질을 뒤흔드는 수준이다. 따라서 주유소의 역할은 불가피하게 확장될 수밖에 없다. 연료를 공급하는 공간에서, 에너지와 서비스가 결합된 거점으로의 전환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에너지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내용이다. 고객이 머무는 시간 동안 무엇을 제공할 것인지, 그 시간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지가 핵심이다.
현재 일부 주유소에서는 편의시설, 세차, 간단한 휴식 공간 등을 결합한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전기차 충전과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한 모델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제한적 사례에 불과하다. 산업 전반으로 확산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익 구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단순히 유류 판매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향후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충전 서비스, 차량 관리, 세차, 나아가 구독형 서비스까지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고객이 어떻게 다시 오게 만들 것인가’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입지다. 주유소는 대부분 도심 접근성이 뛰어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이 특성은 앞으로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류 거점, 생활 서비스 공간, 소규모 상업 기능까지 결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유소는 단순한 에너지 공급 시설이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일부로 재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현재 제도는 여전히 주유소를 ‘위험물 시설’로 규정하고 있다. 용도 제한, 이격 거리, 복합시설 규제는 새로운 시도를 어렵게 만든다. 산업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괴리가 길어질수록 시장의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책의 역할은 분명하다. 주유소를 단순 유류 시설이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로 재정의하고, 복합 기능 도입을 위한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 인허가 절차는 현실에 맞게 간소화돼야 하고, 설비 전환에 따른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지원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전환을 요구하면서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 정책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경영자에게 묻고 싶다. 지금의 사업을 여전히 ‘기름 파는 업’으로 정의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변화는 이미 늦었을 수 있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가격이 아니라 체류 고객이다. 고객이 머물고, 소비하고, 다시 찾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향후 5년은 버티는 시간이 아니다. 판단을 미루는 순간 선택지는 더 줄어든다. 에너지 전환은 이미 시작됐고, 주유소 역시 그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에 맞춰, 지금 무엇을 바꿀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